WednesdayColumn2012. 10. 1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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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 중에 미모의 미국인 여학생이 한명 있었다. 황갈색의 윤기 흐르는 머리칼과 역시 갈색의 깊고 그윽한 눈빛, 그리 흰 피부 언제 봐도 매력적이었는데, 성격도 활달하고 상냥해서 우리는 모두 이 친구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친구는 가족 사진을 보여주면서 내게 설명해줬다. “우리 증조 할머니는 세미놀 인디언이었고, 할아버지는 멕시칸이었어. 내 몸에는 미국 원주민의 피가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미국 백인의 외모를 하고 있던 내 친구가 아메리칸 인디언의 후예라고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좀 어리둥절해졌다. 아메리칸 인디언이라고 한다면 어딘가 아시안하고 닮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이후로 나는 외모를 보고 인종을 판단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졌다.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순혈의 인종을 찾기도 힘들고, 나 역시 순수 한민족이라고 자신할 근거가 없지 않은가.
 
최근 매사추세츠주의 상원 의원 선거전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현재 상원의원은 공화당의 스캇 브라운(Scott Brown). 이에 맞서서 선전을 펼치고 있는 이는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렌 (Elizabeth Warren) 교수다. 문제의 발단은 후보 대담 프로그램에 나온 브라운 의원이 워렌 교수 자신이 ‘미국 원주민’의 후예라고 주장하면서 소수계에게 주어지는 특전을 누렸다고 비난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워렌 교수를 가리키며 ‘어디를 봐서 저 이가 인디안으로 보이는가?’하고 냉소했다. 

 그쯤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며칠 후에는 그의 선거 참모 여러명이 워렌의 정치집회에 몰려와서 아메리칸 인디언 전사들의 노래와 함성을 외치는 식으로 ‘미국 원주민 후보’인 워렌을 조소하는 행동을 저질렀으며, 브라운 의원은 직접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어물쩍 넘기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미국 원주민들 전체에 대한 비아냥거림으로 비쳐진다. 말하자면 ‘비천한 미국 원주민 따위에게 상원의원 자리는 어림도 없다’는 식으로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장치같다. 

 공개적으로 미국 원주민을 비웃는 듯한 이들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들이 아시안을 비롯한 다른 유색인종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행동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품게 된다. 이들이 드러내놓고 미국 원주민을 조롱하는 이유는 아마도 원주민들에게 이렇다할 정치력이 없다거나, 인구가 너무나 미미해 만만하게 여겨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메리칸 인디안이 아닌데도 마치 내 정체성이 짓밟힌듯한 씁쓸한 기분이 든다. 편견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나를 포함하여 누구든 크고 작은 편견의 희생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내가 소속한 합창단에 새로운 단원이 들어왔다. 미국에 온 지 두 달도 안된 중국인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이 사람은 중국인이래. 어쩌면 좋아! 중국어 할 줄 아는 사람?”하고 누군가가 물었고 일제히 시선에 내게 몰렸다. 그들에게는 내가 중국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난 한국인이고 중국어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난 이 분하고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 중국인이 내 앞으로 안내되었고, 내가 그냥 영어로 인사를 하니 그도 서툴지만 충분히 소통가능한 영어로 내게 자기 소개도 하고 합창단에 온 사연도 활달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주위의 미국인 단원들에게 말해줬다. 

“걱정할 것 없다구. 이분이 영어를 잘 하는 걸 뭐.” 선량한 단원들은 공연히 염려를 했다며 웃었다.

 이들은 왜 중국인이 영어를 못할 거라고 미리 단정했을까? 이들은 왜 한국인인 내가 중국인과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 상상했을까? 내가 인종적으로 그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백인처럼 생겼어도 미국 원주민의 후예일 수 있고, 미국에 엊그제 도착한 이민자라도 영어가 유창할 수도 있고, 그들 눈에 똑같아 보여도 중국인과 한국인은 다르다.

 인간은 감각적인 존재이므로 편견이나 피상적인 감각 너머에 있는 사실에 다가가기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시선이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늘 경계하는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2012,10,3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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