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2. 4. 29. 20:53

 

츨발

 

 

 

체사피크 오하이오 수로의 시작점인 조지타운에서 수로변의 마일 포스트를 따라 이동하여 60.7 마일 지점에 웨스트 버지니아의 하퍼스 페리가 나타난다. 여기까지가 100 킬로미터인데, 덤으로  다리 건너서 언덕을 따라 1.5 마일 죽어라고 올라가면 볼리바 (Bolivar)라는 마을이 있고, 그곳 마을 회관이 집결지이다.  하루에 100 킬로미터를 완보하는 사람들의 이동 코스이다.

 

50 킬로미터만 걷는 사람들은 출발점에서 35마일 진행된 White's Ferry 에 집결하여 동일한 코스를 걷는것이다. 35 마일 지점에서 시작하면 마일리지가 모자란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35마일 지점에서 역으로 32.5 마일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 전체 마일리지를 채우게 된다.

 

행사 참가자들을 위한 Support Station (도움센터)이 절반 지점부터 시작하면 네 군데에 설치된다 (그 전에도 있을텐데, 그건 내가 50 킬로 참가자라서 잘 모른다).

 

 

 

 

나의 경우, 올해는 시작 할 때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다. 전날 피곤하게 이것저것 한 데다가 결정적으로는 잠을 설쳤다. 중간 시작지점 모임장소까지 가는 셔틀버스에서부터 꾸벅꾸벅 졸고 앉아있었다.

 

 

 

네개의 써포트 스테이션

 

 

 

1. 오전 10시.  35 마일지점에서 시작하여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35마일 시작 지점에 써포트 스테이션이 서 있다. 5마일을 걷는데 1시간 15분 걸렸다 (시속 4마일로 걸은 셈이다). 거기서 과일을 좀 먹고 견과류와 포테이토칩 조금씩 담은 봉지를 간식거리로 가방에 집어 넣고, 게토레이트 한잔 마셔주고 행진.

 

2. 42 마일 지점 써포트 센터 도착.  오후 1시 15분에 도착. 음료수 마시고 쿠키 두개 챙겨가지고 다시 출발. (먹을것을 한줌씩 갖고 다디다가 지치면 먹어줘야 한다.  배부르게 먹는것이 아니고, 시장기를 느끼지 않을만큼 야금야금 먹으면 좋은것 같다.) 전체 12마일 걸을 셈인데, 어쩐지 이 지점부터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서 괜챦아지겠지 생각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날씨는 전반적으로 아침부터 흐렸고, 오후부터는 비가 뿌릴 것으로 예보되고 있었다.  구름끼고 쌀쌀한 날씨라서 뜨거운 햇살을 피할수 있어서 한편 좋았지만, 좀 쌀쌀했다. 얇은 옷을 몇겹 입고, 쉼없이 걸었으므로 체온은 유지가 되었지만 약간 춥다는 느낌.

 

 

 

(햇볕가리개, 비가 떨어지면 우산대용, 누비라서 방석으로도 좋고, 만능인 내 모자. 앉아서 쉬거나 누워있을땐 이걸 반드시 방석, 베개로 썼다. 숙녀가 날 바닥에 막 앉으면 안되지~ 10여년전에 갭에서 5달라 클리어런스로 샀지 아마.)

 

3. 42-48 마일 지점 (12-18 마일걷기) 까지 걷는동안 몸 상태가 급격히 저하되었다.  선두그룹이었는데 내가 자꾸만 뒤처졌다. 내 걸음이 느려지고 나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속보 경주가 아니므로 상관 없었지만, 작년에는 내가 빠른 걸음으로 한명 한명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라잡는 놀이를 했는데, 올해는 그 반대였다. 중간지점부터 엉덩이 근육이 아프기 시작했다. 특히 왼쪽은 걸음을 내딛을때마다 쑤셨다. 근육 어딘가가 쥐가 나는것 같았다. 이때부터 절름거리기 시작했다.  아픈 근육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살살 걷다보니 절름거리게 되더라.  그러니까, 다리뼈가 시작되는 엉덩이의 근육 뭉쳐있는곳 어딘가에 무리가 간듯 했다. 

 

 

(반다나 손수건을 얌전히 깔고, 샌드위치와 과일)

 

48마일 지나 도착한 써포트 스테이션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길래 그것 하나를 억지로 먹었다. 포도몇알과 오렌지 한조각, 그리고 간식거리를 가방에 집어 넣고 다시 출발. 커피를 먹고 싶었으나 커피 받겠다고 서있는 줄이 길고, 야외에서 버너에 물끓여서 커피 내리는거라 언제 내차례가 올지 알 수 없어 포기하고 그냥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미 이 지점부터 나는 '중도포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이미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고, 상태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엉덩이 부분의 근육이 아파서 한쪽다리를 절름거리고 걷는데다, 졸음이 쏟아졌고 (잠을 못잤으니까), 그리고 샌드위치를 억지로 먹은것이 얹혔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최악이었다).  사람들이 자꾸만 나를 지나쳐갔다. 심지어 나는 길가다가 보이는 바위에 걸터앉아 한참동안 기도하는 사마귀 자세로 졸기까지 했다.  가끔 지나치는 사람이 Are you OK? 하며 물었다. 그때마다 얼굴을 들고 방긋 웃으며 괜챦다고 대꾸를 하긴 했는데, 사실은 죽을 맛이었다.  그냥 거기 누워서 자고 싶었다.  그런데 비는 후두둑거리고 떨어지고, 날은 춥고 (걷지 않고 앉아있으니 체온도 내려가고), 졸음은 쏟아지고, 속은 울렁거리고. 아아 미치겠네....

 

그런데 중간에 포기를 하려해도 다음 써포트 스테이션까지는 가야만 했다.  강변 숲길에서 혼자 포기한다고 누가 도와줄수 있는게 아니니까. 써포트 스테이션까지는 가서 '나 아파서 못한다....' 이렇게 신고를 해야 누군가 내게 교통편을 제공해줄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까 '죽어도' 다음 스테이션까지는 가서 죽던지 말던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절름거리면서 꾸역꾸역 ....

 

         <두가지의 메시지와 나의 선택: 흰 악마 검은 악마 >

 

 

 

이 구간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걷기가 지긋지긋하게 여겨졌고,  집의 침대가 한없이 그리웠고, 평생 절름거리며 살아야 하는 신체 장애인들의 고통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눈뜨게 되었고,  작년에 찬홍이가 이렇게 고통스러웠던거구나 깨닫게 되었으며, 나 스스로도 건강에 자만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아아아. 중도포기의 의지를 불태우며 걷고 있는데, 나를 추월하여 앞서가는 사람의 셔츠 뒷판에 씌어진 선명한 문구, Pain is Temporary, Pride is Forever. (고통은 순간이고 자부심은 영원하다).  마라톤 참가 기념 셔츠인 모양이었다.  그 문장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동안 그 사람은 이미 저만치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금 더 가니 뒤에 오던 사람이 전화를 받고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사람은 달팽이같이 절름거리고 있는 나를 지나쳐 앞서가면서도 여전히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는데, 통화 내용 --- "어, 스탠? 스탠은 아까 아까 중도 포기하고 지금 최종 집결지에 가서 뜨거운 췰리에 피자 이런거 먹으면서 신나게 놀고 있어.  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난 괜챦아...."

 

아 그러니까, 중도 포기한 사람을 누군가가 최종 집결지에 데려다줬구나! 나도 포기하면 누군가 안전하게 데려다 주겠구나!  이건 신의 계시야!  중도포기하면 낙원이 기다리고 있다는 신의 계시야! 좋아, 다음 써포트 스테이션까지만 꾹 참고 가보자!

 

4. 이렇게해서 간신히 54 마일 지점의 마지막 스테이션에 도착 한 것이 오후 여섯시 반.  배도 안고프고, 마침 커피가 그득그득 담긴것이 보이고, 그래서 뜨거운 커피를 연거푸 두잔이나 마셨다. 커피를 마시니 정신이 나는 것 같았다. 비스듬하게 경사진 잔디에 머리가 아래로 가도록 거꾸로 누워서 두 다리를 올리고 몸을 풀었다.  다른 사람들이 신기한듯 쳐다보고 웃고 그랬다. 남들은 머리를 위로 두고 누워있는데 나는 머리가 아래로 가게 거꾸로 있으니까.  (다리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니까 전체적으로 몸을 가볍게 해주려면 거꾸로 있어줘야 하는게 아닐까?)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나서 나는 서포트 팀을 살폈다. '누구한테 가서 중도포기 한다고 말을 해야 하나?' 관계자를 찾기 위해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어쩐지 내 상태가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커피의 각성 작용 때문인걸까? 엉치는 여전히 아프지만 속이 울렁거리는 것도 가라앉고, 졸음도 물러났다. 나는 누운채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면서 깔깔댔다.  사이좋아 보이는 젊은 부부하고 종알거리는데 젊은 남편이 관계자에게 들었다며 "여기서부터 7.3 마일만 더 가면 끝이래"하고 알려준다.  그래서 내가 "거기서 마지막 1.5마일이 지옥이야."라고 말해줬다.  "지옥 포함 7.3마일이면 끝나는거쟎아"하고 그가 대꾸했다. 젊은 아내가 깔깔거리며 내게 힘을 내라고 했다.  니네들은 젊어서 좋겠다....난 지금 죽을것만 같다구.

 

한숨을 푹푹 내 쉬면서도, 나는 더이상 졸립지가 않고, 울렁증도 가라 앉았다는 것이 좋은 징조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중도포기'의 생각을 포기했다.  설마 가다가 쓰러져 죽겠어?  그냥 가보자. 가보는거야.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그렇게 내가 마지막 스테이션을 떠난것이 일곱시. 내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니 한시간에 3마일씩 두시간, 마지막 언덕길 30분. 이렇게 잡으면 될것도 같았다. 나는 음식도 먹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섰다.  작년에 함께 걸은적이 있었던 신사 매트를 길에서 만났다. 매트는 막내아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져오고 나도 동행이 필요했다. 그런데 매트가 말했다, "넌 빨리 걷쟎아. 난 빨리 못걸어. 나때문에 뒤처지지 말고 빨리 앞서가도 돼." 그는 작년에 내가 활발하게 움직이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걷다보니 상태가 좋아져서 느리게 걷는 그를 앞질러 나아갔다. 엉치 근육은 여전히 아팠는데, 내가 달리기 자세를 취하니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걸을때는 아프고 달리면 안아픈거다. 걷기 근육이 다친 모양이었다. 그래서 달리기 자세로, 아주 아주 느리지만 달리기 자세로 바꾸고 계속 진행했다. 내 평생에 수마일 길을 달리기 자세로 가보기도 처음이네.  달리면 안아프니까.

 

도착

 

 

웃기게도 절름거리며 '중도포기'만을 생각하던 내가, 마지막 대략 5마일 거리는 '달리기'를 하고 있었던거다.  나도 달리기가 되는 인간이구나~  그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려서 50킬로 지점에 도착한 것이 오후 아홉시.  그리고 가파른 언덕 두개를 올라가 집결지에 도착한것이 아홉시 반. 아, 해 낸것이다. 그것도 평생 안해본 장거리 조깅까지 구사해가면서.

 

여덟시 반까지도 강변 숲길은 훤하게 빛나고 있었다. 숲은 검고, 길은 희게 반사가 되었다. 왼편으로는 큰 강이 굽이치고 있었고 밤새들이 울었다. 참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그 이후에도 희게 반사되는 길과 얇게 낀 구름이 반사해내는 묘한 빛때문에 사방이 밝게 느껴졌다. 나는 가져간 손전등도 켜지 않았다. 신비한 밤의 빛을 나는 보았다.  그 신비한 빛속에서 절름거리던 내가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내게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삶은 얼마나 신비로운가. 고통과 대화하며 그를 물리쳤을때 내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런 많은 생각들이 강물처럼 굽이쳐 흘렀다. 어두운 숲길에 나는 혼자였지만 나는 대지와 강물과 숲과 새들과 신의 은총에 감싸인, 요람에서 쉬고 있는 아기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던거다.   철저히 혼자서 자신에게 닥친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것도 신의 선물처럼 여겨진다.

 

 

 

 

집결지인 볼리바 센터에서 후에 도착한 매트와 매트의 아들과 다시 만나고, 그리고 작년에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보고, 우연히 한 테이블에 앉게된 사람들과 가족처럼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매트는 내가 셔틀버스에 오르기 위해 떠나면서 "See you next year" 하고 인사를 건네자, 마치 먼길 보내는 아버지 같은 표정으로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안아주었다. 참 착한 아저씨이다.  메트로 주차장에 세워놓은 내 차를 끌고 집에 오니 자정이 넘었다.  왕눈이가 미칠듯이 반겼다. 아, 지옥과 천국을 다녀온 길고 긴 하루였다.  내년에도  또 가고 싶다. Pain is Temporary, Pride is Forever

 

 

 

 

맺음

 

 

빨리 걷는다--> 느려진다--> 절름거린다 --> 주저 앉는다 --> 일어난다 --> 걷는다 ..> 달린다.  아마 조금 있으면 날개가 돋을지도 몰라, 날개가 나오는 고통을 견딘 후에. 그러니까 고통은 선물이야. 난 이제부터 달리기 할래. 아니 어제부터 나는 나의 의지가 아닌 신의 의지대로 달리기를 시작해버린거야. 언젠가 날개가 돋을지도 몰라, 나의 의지가 아닌 신의 계획대로. 난 시험처럼 거쳐야 하는 고통을 잘 견뎌내면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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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