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2. 4. 18. 21:3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94607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 마음 놓고 길을 가자 새 나라의 새 거리!”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나는 학교의 복도에서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좌측 통행’을 하라는 것을 골수에 새겨지도록 배우고 실천했다. 복도에서 좌측통행을 하지 않다가는 ‘당번’이나 ‘주번’에게 걸려서 칠판에 이름을 적히는 일이 허다했다. 새 나라의 어린이로서 나는 착실히 좌측통행을 몸에 익히며 성장했다.


 

그런데 십여 년 전 내가 미국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였다. 학교 건물 계단을 오르는데 마침 수업을 마치고 우르르 몰려 나오는 학부생들이 얌전히 ‘좌측 통행’을 하는 내 앞 길을 물밀듯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왼쪽은 비워놓고 복도의 오른쪽으로 파도처럼 밀려 내려와 얌전한 나의 좌측통행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참 공중도덕이 없는 학생들이로군. 미국 사람들이 질서를 잘 지킨다고 하는 말도 다 거짓부렁인 거야!’ 미국에서 자동차나 사람이나 모두 ‘우측통행’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일을 겪은 이후, 복도에서 학생들이 통행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한 후의 일이었다. 오히려 내가 미국 학생들의 통행을 방해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길의 오른쪽을 차지하고, 사람들도 보행할 때 마주 오는 사람과 지나칠 경우 각자 길의 오른쪽을 차지하는 ‘우측통행’이 이뤄지는데, 내가 자란 한국에서는 왜 차는 오른쪽, 사람은 왼쪽이라고 가르친 걸까? 내가 추측하기에 학교 복도나 비좁은 통로에서 ‘좌측통행’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식민지 시절부터가 아니었을까 한다. 식민지 시절부터 ‘좌측통행’ 문화가 학교에 정착했고, 그래서 그것이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고, 그것과 상관없이 한국의 도로 교통 시스템은 미국식으로 정착을 한 결과,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길이라는 현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미국에서는 오른쪽에 사람들이 서 있고, 급해서 에스컬레이터에서조차 걸어야 할 형편인 사람들은 왼편을 통해 걸어올라간다. 그래서 메트로역처럼 부산한 곳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오른쪽에 붙어서서 왼편을 열어 놓아 주는 것이 일반적인 에티켓이다.


 

날이 포근해지니 인근 공원으로 소풍이나 산책을 나가는 일이 잦아진다. 여기서도 ‘우측통행’의 원칙은 지켜진다. 특히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사용할 때에는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신경써서 우측통행을 하는 것이 좋으며, 친구, 가족들과 여럿이 산책을 할 때에도 주변에 지나치는 사람들을 신경 쓰고, 길의 절반은 열어두는 배려를 잊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때 걷는 사람이 진행방향 길의 오른편을 차지하고, 왼편은 누군가 지나 갈 수 있도록 남겨둬야 한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특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저 멀리 내 뒤편에서 “On your left!”라고 소리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당신 왼쪽으로 통과하겠습니다!”라는 신호다. 이럴 땐 좀더 신경 써서 길 오른편으로 옮겨가는 것이 좋다. 이렇게 통과하는 사람을 신경 써주는 제스처를 해 주면 그는 통과하면서 “Thank you!”라고 인사를 날릴 것이다. 만약에 산책로에 자전거를 끌고 간다면 “On your left!”을 열 번쯤 소리쳐서 연습을 하고 나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녀들과 함께 공원에 자전거를 끌고 나갈 때도 이것을 숙지시켜주는 것이 좋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내가 빠른 걸음으로 앞사람을 추월해 갈 때도, 앞에 가는 사람의 왼편으로 통과하는 것이 좋다. 만약에 길의 오른편으로 가고 있는 앞사람의 오른쪽 구석으로 내가 통과를 하게 되면 상대방은 어딘가 ‘공격 당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무언의 도로 교통을 상대방이 어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가끔 산책로에서 이런 미세한 무언의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 나도 모르게 언짢은 기분이 드는데, 얼른 마음을 고쳐먹고 그에게 웃어준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저이도 어쩌면 나처럼 좌측통행 사회에서 새로 전입을 했는지도 몰라. 그래서 자신이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지. 차차 깨닫겠지.’

 

 

 

2012,4,18

 

 

 

* 전에 미국에서 수년간 살고 있는 한국인 대학원생과 함께 산책을 하는데, 자전거 탄 이가 On your left! 외치고 지나갔다. 나는 평소에 늘 듣던 소리니까 그냥 뒤도 안돌아보고 길을 좀 비켜주고 있는데 학생이 내게 묻는거다, "지금 저 사람이 뭐라고 한거에요?"  On your left.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왼쪽으로 추월한다고 신호 보내는거에요.  난 이미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누군가에겐 낯설고 말귀도 못알아듣겠고 그런거다.  마찬가지로, 아마도 사람들에게 당연하고 익숙한 정보들을 내가 놓치는 것이 아주 많겠지....   아무튼 나로서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생각'을 찾아내곤 한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