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2. 4. 6. 17:26

 

 

 

2012년 4월 5일 (목),  운하 4마일에서 14마일까지 왕복

총 거리: 20마일

시간: 오전 8:45 - 오후 5:45 (9시간)

앉아서 쉰 시간은 30분도 안되고, 오가며 딴짓하고 한눈 파느라 거북이 행진. (거북이도 만나서 놀고...)

 

 

이번주가 내게는 스프링 브레이크이다.  집에서 책보면서 주변 정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래도 날 좋을때 20마일 한번 걷자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가방에 바나나 두개 넣고, 물 한병 담고. 점심을 싸기도 귀챦아서 베이글 가게에 들러서 계란 샌드위치 하나 사고.  포토맥 애비뉴에 차 세우고 10마일 걸어 갔다가, 간 것 만큼 되돌아 와야 하는 길. 목표는 그레이트 폴스.

 

부활절, 석탄알, 식목일이 모여 있는 일년중에 가장 '잔인한' 계절. 4월. '천국'가는 길이 이러할 것이다...라고 상상할 만큼 들꽃으로 덮인 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민들레가 지천으로 깔려 있어서, 꽃을 따 모아서 화환을 만들고 싶을 지경이었는데, 참았다... 그래도 꽃을 따면 죄가 될것 같아서.  (못 참고 몇송이 땄지만, 아마 용서 해 주시리리.) 씁쓸한 민들레 꽃. 

 

 

 

수로에 살던 거북이 (자라?)가 해바라기 하러 길로 올라와 있다.  볕이 좋은 4월.  풀잎을 따 가지고 거북이를 간지르고 있는 중이다.  산 짐승이 산 짐승을 만났는데 어찌 그냥 지나가리오. 인사도 하고 해야지. 안 그렇노 거북선생?

 

 

 

 "아이구 아이구, 야, 너 뭐야? 그냥 지나가 주면 아될까?  사색하는데 방해가 되는구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 놓아라. 안 그러면 번작이끽야!  구워 먹겠노라!!!"  삼국시대로 돌아가 아리따운 수로부인을 내 놓으라고 시비거는 중이셔~

 

 

 

 

 거북아, 네 평생에 네가 하늘을 날을 일이 있겠느냐? 너는 운이 기가막히게 좋아서 이 볕 좋은날 너의 그 2차원적 삶으로부터 3차원의 세상으로 날아 오른것이지.  기적이 일어난 줄 알아라.

 

 

 

 

박태기꽃, 도그우드 하염없이 피어있는 물의 나라 포토맥.

 

 

 

여기서부터는 그레이트 폴스 찍고, 돌아 오는길.

 

갔던길 되돌아 오기가 뭣해서, 강변의 빌리 고우트 트레일로 에둘러 왔는데, (그러니까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역시 숲속 길을 걸으니까 평소에 보지 못하던 현상이나 숲속 길에 피어나는 희귀한 꽃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어떤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데 분명 어디서 '딱!' 소리가 난거다. 새소리 물소리 온갖 소리가 널려있는 숲에서, 그런 물리적인 소리와 관계없는 어떤 소리.  '달빛 소리'같은 어떤 소리가 분명 난거다.  그래서 이상도 하다 하고 둘러보다가 이것을 발견했다.  도토리가 싹이 터진 소리. 떡잎이 벌어지는 도토리의 껍데기가 깨지면서 낸 소리.  그 소리는 내 귀에 들린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렸을거다 아마.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  도토리 기지개 켜는 소리를 들으니 며칠전에 봤던 '이웃집 토토로' 생각이 났다.  도토리 싹이 나도록 밤새 기합을 넣던 토토로와 아이들.  내가 마치 생명의 존재인것처럼, 내가 지나치니까 도토리가 싹이 트는구나. 생명이 생명에게 보내는 인사.  아마 그런것이겠지. 

 

 

 

천국가는 길이 이런 꿈같은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염소가 간신히 다녔을 이 좁은 강변 숲속길을 한참 걸었다. 가는 길보다 에둘러 돌아온 그 길이 참 좋아서 시간 가는줄 몰랐다.

 

 

집에와서 찬밥 있는거 김치랑 먹고, 전기 담요 깔려있는 찬홍이 방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한참 걷고 난 후에 몸이 으슬으슬해서 따끈한 목욕을 했어야 했는데,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내가 온종일 걸은 실제 거리는 20마일보다 훨씬 길 것이다. 에둘러 다녔으니까.  그래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여겨졌다.  그러면 이달 말에 걷는 32마일 (50킬로)도 문제 없을 것이다. 힘들겠지만 결국 잘 해 낼 것이다. 2월 한달간, 나 혼자 앓고 지낼때는 5분 10분 걷는일도 힘이 들었었다.  매일 왕눈이 산책 시키는 것이 고역이었으니까.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하루에 거뜬히 20마일을 걸어낸 것 자체가 부활이나 기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내가 잘 견뎌낸것도 같다. 이렇게 건강하여 온 세상에 들꽃이 가득한 계절을 걸어낼수 있는 것 만으로도 나는 무조건 하늘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에 무슨 소리에 깨어보니 내 얼굴에 달빛이 가득. (보름달인가?)  달은 아직도 내 얼굴에 가득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그리고 햇님, 달님, 별님이 나에게 축복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사는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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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