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2. 2. 8. 14:28
Practical Wisdom


철수씨는 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한다. 철수씨가 매일 해야 하는 일은 그의 근로계약서에 상세히 명시되어 있는데, 바닥을 걸레질한다든가, 환자의 침구를 정기적으로 교체한다든가 하는 일이다. 철수씨가 일하는 병동에는 지난 6주간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흑인청년이 있다. 그 흑인 청년은 동네에서 친구와 다투다가 그 지경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환자의 아버지가 매일 와서 절망적인 표정으로 환자를 지키고 있다. 철수씨는 그 아버지의 모습이 참 딱해 보였다. 그래서 그 아버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일과 중 아버지가 잠시 화장실에 간다거나,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쐰다거나 하는 이유로 자리를 비울 때 환자의 병실을 치워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복도에서 만난 흑인 청년의 아버지가 다짜고짜 철수씨에게 화를 냈다. 왜 아들의 병실을 며칠째 치워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철수씨가 청소하는 것을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청소를 안 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눈치였다. 철수씨는 난감했다. 분명 오늘도 신경 써서 깔끔하게 청소를 해 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청소부 철수씨’라면 나는 어떻게 처신 했을까? 몇 가지 답안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청소를 했노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환자의 아버지는 내 말을 믿지 않고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 둘째, 부서 감독관을 불러다 놓고 내가 청소를 했는데도 억울한 소리를 들었다고 3자 개입을 부탁한다.  그러면 나는 좀 덜 억울한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 셋째, 나도 똑같이 큰소리로 화를 내는 방법도 있다.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 아니던가? 넷째, 상대방을 싹 무시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내 할 일을 할 수도 있겠다.


여러 가지 방법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그런데 철수씨는 어떻게 했을까? 그는 빙긋이 미소 짓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후에 자신이 조금 전에 싹 치운 병실에 들어가 다시 청소를 하고 나왔다. 철수씨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아들은 벌써 6주째 의식불명이고, 그 아버지는 속수무책으로 아들 병실을 지키고 있고, 내가 보기에 이들이 너무 딱했어요. 그 아버지로서는 청소가 안되어 있다고 내게 행패를 부리는 것 외에는 그 슬픔을 해소할 데가 없었을 거에요. 딱하잖아요. 내가 그이 보는 앞에서 청소를 하면 아버지가 누워있는 아들을 위해서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보람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사실 철수씨는 병원 청소부이고, 그의 근로 계약에는 환자나 환자 가족의 마음을 배려하고 보살피라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단순하게 청소만 하면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철수씨는 자신을 ‘청소부’로만 여기지는 않았다. 철수씨는 걸레질을 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위 이야기는 인간의 사회성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베리 슈워츠(Barry Schwartz)의 근저 ‘Practical Wisdom (실용적 지혜)’의 서두에 소개된 어느 청소부의 실제 사례를 한국인 이름으로 바꿔서 요약해 본 것이다. 그 청소부의 이름이 철수씨이거나 지미, 요한이라 해도 결국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삶을 조화롭게, 정의롭게 지켜주는 것은 사실은 법에 명시되거나 계약서에 명시된 사항들이 아니다. 우리가 삶의 경험을 통해서 쌓을 수 있는 ‘배려심’, ‘덕성’이 오히려 더욱 소중한 가치라고 이 심리학자는 역설한다.

 
요즘 텍사스주의 댈러스에서 한국계 이민자들과 유색인종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발단은 굉장히 사소해 보인다. 어느 한국계 가게 주인과 흑인 손님 사이에서 일어난 극히 개인적인 마찰이었다. 그런데 그 마찰이 인종문제로 비화된 모양새이다. 어쩌면 양측 모두 화가 날대로 나서 갈 데까지 가보자고 작심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는 일에 지쳐서 악에 받치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던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기도 하고, 앞뒤 안 가리고 상대방과 나 자신에게 독이 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후에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막심한 후회감은 어찌해야 하는가? ‘청소부 철수씨’의 아량을 기억하면 오늘 하루 나의 실수를 모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12,2,8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