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12. 21. 17:5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22490

매년 12월에 시사 주간이 타임 (Time)지는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여 기사화하는 전통이 있다. 올해 12월 26일자 타임의 주인공은 ‘시위자들 (The Protester)’로 선정되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방송이나 신문에서 ‘다사다난했던’이란 표현으로 한 해를 정리하는데, 올 한해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무료 점심’ 투표에 이어진 ‘서울시장’ 선거로 올해 하반기가 거침없이 흘러주었고, 미국에서는 ‘월스트리트 점령’을 필두로 한 점령운동이 이어졌으며 현재 진행 중이다.

며칠 전에는 30년 넘게 북한을 통치한 최고 통치자의 사망 소식이 있었고, 그 지역에서는 3대에 걸친 세습이 이어질 모양이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기도 하다.
 
이 많은 일 들 중에서 전세계적으로 발생하여 바이러스처럼 번져 간 한가지 현상을 타임지는 주목했다. 2011년은 전 세계의 압제 받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서로 생각이 통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뭉쳐서 독재자들을 몰아내거나,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 연대했던 시간으로 기억되게 될 것이다.
 
그 발단은 튀니지에서 점화되었다고 타임은 설명한다. ‘모하메드 보와지지’라는 스물 여섯살의 청년은 튀니지의 작은 마을에서 길거리 행상으로 가족과 연명을 하며 살고 있었다. 1년 전 12월 중순, 길거리 단속에 나선 경관이 그의 저울을 빼앗고 그를 때린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단단히 화가 난 그는 관청에 찾아가 호소를 해보지만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는 몸에 인화물을 뿌리고 분신한다. 이 청년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청년은 1월4일에 운명했고, 그로 인한 튀니지의 시민 시위는 정점에 다다랐다. 그리고 튀니지의 대통령은 사우디 아라비아로 망명을 해야만 했다. 시민의 승리였다.
 
이집트에서도 칼레드 사이드라는 28세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경찰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저항하여 일어난 시민들은 히잡을 쓴 여성들, 기독교인들, 무슬림들, 각계 각층의 빈부를 초월한 사람들이었다. 3주간 45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으며 이는 14세 이상 이집트 전체 인구의 8%에 이른다는 통계이다.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는 동안 무바라크 대통령의 군사조직 조차 시위대에 총을 겨누지 않았다. 독재자의 실각이 이어졌다.
 
요르단, 바레인, 모로코, 알제리아, 시리아, 리비아에서 독재자들에 대항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스페인, 그리스, 이스라엘, 영국에서도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마침내 7월에는 뉴욕의 경제 중심가에서 "Occupy WallStreet" 운동이 발화되기에 이른다. 이 운동은 아직도 겨울의 추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타임지는 이 모든 시민의 저항 운동 속에서 인터넷이나,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기능을 재조명 했다. 이전까지 인터넷은 사람들이 그저 개별적으로 음악을 찾아 듣고, 재미있는 동영상을 찾아 보고,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차단해버리는 도구로 사용했다면, SNS의 등장 이후, 사람들이 자신과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연대하고, 광장에 모여서 행동하도록 보조하는 도구적 역할을 해 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인터넷이 사람들을 골방으로 이끌었다면, 오늘날 SNS가 사람들을 광장에 모이게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세계의 민주화에 가장 기여한 것으로 미국이 개발해 낸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일지도 모른다는 자평을 하고 있다.
 
사실 ‘개신교’에 해당하는 영어가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인데 이는 구교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저항자들’, ‘시위자들’, 구시대의 가치나 이념에 의문부호를 달고 의견 개진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인류사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저항이나 시위라는 말에 어떤 ‘저항’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저항이나 시위 역시 역사 발전의 동력이며 과정임을 돌아보는 안목도 필요하리라.

2011,12,21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