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1. 11. 25. 10:24

올가을 프로젝트,  장거리 여러번 해서 백마일 걸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을 오늘 마칠수 있었다.  원래는 20마일 걷기를 다섯번 해서 백마일 채우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렇게는 못했고, 20마일은 세번, 나머지는 10, 15 뭐 이런 식으로 했다.  오늘 찬홍이와 20마일 할 생각이었지만, 찬홍이가 학교에서 풋볼하다가 무릎을 다쳤다고 엄살을 떨어서,  그냥 무리하지 않고 15마일로 마무리 했다.

오늘 코스는 하퍼스 페리 시내에 차를 세워놓고, 다리 건너서 61마일 지점에서 68 마일 지점까지 왕복 (7x2=14)하고 다시 하퍼스 페리 시내로 돌아가는 15마일 거리였다.

이로써 나는 체사피크 오하이오 수로길을 워싱턴 디씨의 시작점에서부터 68마일 거리까지 내 두발로 걸은 셈이다. 지난 봄에 50킬로미터 걷기의 마지막 지점이 하퍼스 페리였기 때문에, 그 이후의 길이 늘 궁금했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 '너머' '미지의 세계'를 가 볼수 있어서 소원 한가지를 풀은 기분이었다.  나는 여태 몰랐는데, 하퍼스 페리 너머, 북쪽으로 올라 갈수록 수로변 강의 풍경이 절경이 되더라....  기가 막히는 절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전 열시반에 하퍼스페리에 도착하여 걷기 시작.  오후 다섯시에 다시 차 세워 둔 곳에 돌아왔다.  중간에 앉아서 다리쉼도 하고, 여유있게 걸었다.



(아래)  셰난도어 강과 포토맥강이 만나는 지점 (하퍼스 페리가 두 강이 만다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여기서 오늘의 걷기 출발.



하퍼스페리의 상징과도 같은 철교를 지나 (저 건너 하퍼스페리 마을이 보인다)




반마일쯤 가다보면, 이런 수로변 마일 표시를 만나게 된다. 61마일.


지난 며칠간 날이 흐리고 비가 왔기 때문에 강에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파도소리같은 물소리가 났다.  흑탕물같은 강물이 거침없이 막 쏟아져내리는 풍경을 보면서 --- 아, 아이스 카페라테 같구나...했다.





62마일 포스트.



그런데 상류로 올라가면 강이 호수처럼 고요해진다.
내가 발견한 현상.  강이 호수처럼 고요해보이는데, 강물에 나무기둥 떠내려가는 것을 보면 내가 달리기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떠내려가는 것이다.  그러니 물이 흐르는 속도가 엄청 빠른 것인데, 육안으로는 마치 고여있는 호수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 고요해보이는 강을 한참 내려다보고 걸으며 생각했다. 

-- 정말 너르고 큰 강은, 물이 아무리 거칠고 세게 흘러도 저렇게 호수처럼 평온해보이는구나.  수로쪽 개울은 얕은데도 돌돌돌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데 저 큰강은 오히려 물이 깊고 넓고 빨리 흐르면서도 소리가 없구나.   저렇게 크게 움직이면서도 고요할수 있는 인품을 키운다면 좋겠다.  어떤 일에도 호수처럼 고요할수 있는 평정심을 키우면 좋겠다.







수문 근처에는 반드시 수문 관리인의 사택이 있는데, 물론 지금은 인적이 없는 기념물에 불과하다.  나는 이 빈집을 지나칠때면 늘 똑같은 생각을 한다: "저 집에서도 한때는 온가족이 모여서 웃고, 떠들고, 저 안에서 애도 태어나고, 누가 죽기도 하고 그랬을텐데...."  늘 같은 생각에 잠겨서 수문관리인 주택을 지나치게 된다.

수로 근처에는 이렇게 버려진, 혹은 허물어져가는 건물들이 남아있는데,  빈집이나 허물어져가는 건물의 흔적들이 보이면 쉽게 시선을 떼지 못한다.  나는 허물어져가는 것들에 대해서, 강박증적인 집착을 보이는것도 같다.  거기 살던 사람들이 웃음소리가 들리는것도 같고.  자꾸만 슬픈 기분이 드는 것이다.






68마일 포스트에서 반환.




저기, 아직 내가 걷지 못한 길이 이어져 있고, 저기 길이 남아 있어서 나는 안심이 된다.



아까 지나쳤던 작은 집 앞 계단에서 쉬면서 뜨거운 커피.




물에 허리까지 잠긴 강변의 나무들.



오늘 나의 동행이 되어준 나의 귀냄이.




산골에는 저녁이 빨리 찾아온다. 저만치 철교가 보인다. 저 다리를 건너 다시 하퍼스페리 시내로



추수감사절 휴일이라,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아 텅빈 유령의 도시 같이 고요했던 하퍼스페리.



오늘 날씨가 참 화창하고 따뜻하고 좋았다.  그래서 얇은 겨울 잠바 입고 간것도 벗고 나중에는 그냥 스웨터만 입고 온종일 걸었다. 선물같은 아주 예쁜 하루였다.  :-)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