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11. 17. 00:2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00295

강준만씨가 최근 펴낸 ‘강남좌파: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2011)’는 한국 사회에서 ‘강남 좌파’라는 신조어가 갖는 위상과 의의를 소상하게 설명해 주며 조국,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을 그 대표적인 ‘왼편’에 그리고 소위 ‘강남 우파’라 할 만한 오세훈, 박근혜의 행보를 대별하여 스케치하고 있다. 올해 7월에 발간되어 인쇄를 거듭하고 있는 이 책이, 몇 달 후에 태어났더라면, 저자는 아마도 수 백 만원 월세를 내고서라도 셋방살이를 ‘강남’에 고집했던 박원순씨나 그를 지원했던 안철수씨를 왼편에, 강남의 고액 피부 클리닉을 드나들었던 나경원씨를 우편에 배치하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보게 된다.

 강씨의 해설에 의하면 ‘강남 좌파’란 ‘고학력, 전문직, 화이트 칼라 중산층이면서 진보적 발언을 하는 이들로 기존의 좌파가 노동자 단체를 주요 지지 세력으로 하는 것과 차이가 나며, 자본주의를 비판하더라도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지 않고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 ‘강남 좌파’가 유독 21세기의 한국 사회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서, 다른 나라에도 명칭은 다르지만 비슷한 집단이 존재한다. 일단, 미국에는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이 있다. 리무진이나 개인 비행기를 타고 다닐 정도의 부유층이면서 진보적 발언을 하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이되 소형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공공교육을 주장하고 지원하면서 자신의 자녀들은 사립학교에 보낸 민주당의 테드 케네디 같은 정치지도자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사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팬이지만, 그가 워싱턴DC에 입성하면서 그의 두 딸을 공립학교가 아닌 상류층 자녀들만 다니는 사립학교에 보냈을 때 약간 실망했었다. 워싱턴DC의 공립 교육이 열악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대통령의 자녀가 다니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겠지만, 그가 공립학교 쪽으로 결단을 내려줬다면 얼마나 멋있었을까?

 비슷한 개념으로 영국에는 ‘샴페인 사회주의자(Champagne Socialist)’가 있고, 러시아에 ‘샴페인 볼셰비키(Bollinger Bolshevik)’, 호주와 뉴질랜드에는 ‘샤도네이 사회주의자 (Chardonnay Socialist)’가 있다. 대략 빈민, 노동자 계급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고급 음료 ‘샴페인’이나 ‘샤도네이 백포도주’를 즐기는 것과 같은 모순점을 지적하는 별칭이다. 독일에는 ‘토스카나 파(Toskana Fraktion)’가 있다. 여름휴가를 토스카나에서 즐기는 좌파를 지칭하는 말이다. 프랑스에는 ‘캐비아 좌파(Gauche Caviar)’가 있다. 고급 상어 알 요리를 즐기는 좌파라고 비꼬는 표현이다. 네덜란드의 ‘살롱 사회주의자(Salon Socialist)’들은 자신들이 너무나 고고한 나머지 주로 살롱에 앉아 사회주의를 논하는 데 그치고 만다는 것을 풍자한 것이고, 폴란드의 ‘커피숍 혁명가’는 사회주의를 논하긴 하지만 빈민층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중상류층 식자들을 비꼰 것이다.

 전체적으로 ‘강남 좌파’를 비롯하여, 이와 맥을 같이 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표현들은 대개는 먹고 살만한 지식인들의 좌파적인 언행과 그에 부합하지 않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냉소적인 표현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강남 좌파’는 이제 그 개념이 초기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서서히 중립적인 이미지로, 심지어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이미지로 진화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사회가 다양화되어 가고 있고,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닌 21세기에, 자본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사회에서 좌파에게만 순결주의적 자기희생이나 도덕성을 묻거나 요구하는 것 역시 모순 일 수 있다는 뜻이리라.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좌파나 우파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좌파적으로 혹은 우파적으로 판단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강준만씨는 이 책에서 좌파나 우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내게 보여준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내 오른손과 왼손이 아닌가?


2011,11,16 이은미


박원순씨 서울시장 취임식을 유튜브로 보면서, '아하!' 그 사람의 방법을 파악했다.  이분이 '뭐 공약이 뭐냐고 묻는데, 공약이 별건가요. 이렇게 서울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희망사항을 잘 꾸려나가면 되는거 아닌가요 (기억나는대로 정리)' 라는 대목이 있었다.  시장선거중 상대편이었던 나씨가 청사진을 제시하며 조목조목 따지고, 박씨한테 당신도 이런걸 제시하라고 몰아 붙일때, 박씨가 좀 어벙하게 대꾸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살림을 꾸려나가겠다 이거다.

가령 지도자가 큰 그림을 그리거나 제시하고 남들에게 따라오라고 제안하는 방식은 Top-down Process, 지도자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는 방식을 Bottom-up Process 라고 하는데  한쪽에서는 탑다운으로 리드를 하면서 자신의 시선을 낮추겠다고 말했고, 한 쪽에서는 큰 그림 제시 없이 밑바닥 정서부터 훑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이 말하자면, Empowering Evaluation 기법이라는 것인데,  Fetterman 이라는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가 열정적으로 여러나라 지방도시에서 직접 실연을 하던 방법이기도 하다. 도시나 커뮤니티에서 뭔가 계획을 세울때, 구성원들이 모여서 가장 필요한 것을 정하고 순번을 정하고 실행 방법을 정하고...  왜 Empowering Model (Empowerment Evaluation)이라고 하는가 하면, 구성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구성원들이 주체가 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지.  박시장도 '여러분이 시장이고 제가 시민입니다'고 설명을 하는데, 바로 시민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법을 그가 서울에서 현재 실천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몇해전에 Empowerment model 을 교육적으로 활용하는 모델을 짜면서, Fetterman 교수에게 메시지를 보냈을때, 그는 동영상으로 즉시 답신을 보내 올 정도로 그가 하는 일에 열정적이었다.  이런 일이 열정 없이는 참 하기 힘든 일이 아닌가?

이제 좌파니 우파니 하는 말은 어쩌면 걸핏하면 아무한테나  '빨갱이' 소리를 내지르는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의 언어가 될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