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11. 2. 14:0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91368
1960년대 영국. 고상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야 할 영국의 방송에서 ‘저질’ 락앤롤 (Rock and Roll) 음악이 흐르면서 청소년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위대한 영국 정부는 이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영국 영토에서의 락앤롤 방송을 금지시켜버렸다. 그러자 이 라디오 팀은 배를 타고 북해로 나갔다. 영국 영토가 아닌 바다에서 방송을 해대기 시작했다.
 
2009년 출시된 영화 ‘해적 라디오(Pirate Radio)’의 기본 플롯이다. 실화를 근거로 한 코미디 영화라고 하는데 어디까지가 실화인지는 나도 확인을 안 해 봐서 잘 모른다. 다만 이 해적 라디오 방송의 배를 침몰 시키기 위해서 정부가 공격을 감행하자 라디오를 듣던 수많은 애청자들이 작은 배들을 끌고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어쩐지 눈물이 나왔다.
 
나는 용인의 농가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집 안팎에서 일을 할 때면 늘 라디오를 곁에 두셨다. 가는귀를 먹은 할아버지가 라디오를 틀면 대문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아주 소리가 컸다.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란 나는 그래서 할아버지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학습했다.

매시마다 꼬박꼬박 흘러나오는 뉴스 덕분에 뜻도 모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하여 아는 척을 하거나, 누군지도 모르는 세계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의 이름에 밝았다. 돌아보건대 가족과 떨어져서 할아버지 품에서 자라던 꼬마에게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라디오는 햇살 같은 위안이었다.


 
최근에 나는 이상한 라디오를 가끔 듣는다. 디지털 미디어 파일로 올라오는 프로그램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팟캐스트 (podcast)’라고 부른다. 내가 가끔 심심풀이로 듣는 것은 ‘나는 꼼수다,' 줄여서 ‘나꼼수’라고 하는 이상한 라디오다.
 
‘나꼼수’에는 네 명의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신을 ‘총수’라고 소개하는 사람, ‘목사아들 돼지’라는 시사 평론가, 전직 국회의원이며 치명적 매력남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인물도 있고, 시사 잡지의 기자도 있다. 이들과 함께 초대손님들이 나와서 뭔가 심각한 얘기를 농담처럼 떠들어댄다.
 
얼마 전에는 집권 여당의 대표라는 의원이 이 프로그램에 등장을 했다. 그는 자신이 ‘나꼼수’에 출연할 테니 황금 시간대에 인터뷰를 잡아달라고 청해서 사람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는 이 프로그램의 생리를 잘 이해 못하고 이 방송의 정체에 대하여 재차 물었다. 그러자 고정 출연자들이 설명을 해준다, “의원님, 이것은 방송이 아닙니다. 팟캐스트이지요. 현재 방송법의 범주 바깥에 존재합니다.” 팟캐스트를 하는데 황금 시간대라는 것은 존재 하지 않으며 아무나, 아무 때나, 어디서나 올려진 파일을 클릭하거나 다운받아서 들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그 의원님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또한 현행법이 정한 방송이나 미디어 법의 규제 범위 밖에 있어서 현행법으로는 통제가 불가능 하다는 것도 출연자들의 설명으로 알게 된다.
 
며칠 전에는 어느 철학자가 출연하여 교육방송에서 자신의 프로그램이 중단되게 생겼다고 호소를 한다. 그의 소망은 그냥 본래 계획대로 철학강의를 마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해적같은 네 명의 고정 출연자들은 열심히 응원해드리겠다며 허풍을 친다. 나도 한가롭게 집안 청소를 하며 이 프로그램을 듣다가 이들과 함께 깔깔대고 만다. 그리고 파일의 정지 버튼을 누른다. 다른 할 일이 있으니 나머지는 나중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이 바뀌고 매체도 바뀌지만 우리의 삶의 양태와 고민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라디오에서 듣던 것을 이제 나는 아이팟이나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듣는다. 영국에서 법으로 라디오 방송을 규제하려고 했을 때 이들이 배를 타고 나가 해적 방송을 띄웠듯, 소통에 답답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대안 매체로 이동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어릴 때 시간을 놓쳐버리면 방송을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이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아무 때나 내가 편할 때 파일을 꺼내서 필요한 만큼 들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멋진 신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2011, 11, 2 수. 이은미


추신: 원고를 보내고 난 후, 간밤에 김용옥 교수가 교육방송에서 중용 강의를 완주하게 되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음, 아, 이거슨 나꼼수 헌정 칼럼 되시겠다 ㅋㅋㅋ.


아래는 뉴욕 타임스 11월 1일자 언라인 기사 카피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