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9. 2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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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의 계절로 일컬어지는 가을이 강물처럼 우리 곁을 지나고 있다. 가을이 아주 가기 전에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싶다. 그런데 올 가을에는 나 혼자 방구석에서 읽는 대신에 어디 볕 좋은 공원에 나가 바람을 쐬며 누군가를 위해 조롱조롱 책을 읽고 싶어진다.

 워싱턴DC의 Landmark E Street Cinema 영화관에서 프랑스 영화 ‘마거릿과의 오후의 데이트 (My Afternoons with Margueritte)’가 상영 중이다.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에 바보 사나이가 산다. 글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고 순박하고 어수룩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바보 취급한다. 이 바보 사나이가 어느 날 공원의 벤치에서 책을 읽는 95세의 할머니, 마거릿과 조우하게 된다. 글을 잘 읽는 작고 상냥한 할머니와 글 읽을 줄 모르는 순박한 중년 사나이. 할머니는 소리 내어 글을 읽어주고, 사나이는 할머니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할머니는 자신이 책 읽어주는 것을 들어주는 사나이가 고맙고, 사나이는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고맙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시력이 나빠져서 더 이상 책을 읽어 줄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사나이는 낙심한다. 사나이는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돋보기를 꺼내 들고 책 읽는 연습을 한다. 시력을 잃어가는 할머니가 너무나 딱해서. 그런 할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그래서 동네의 바보였던 사나이는 책 읽는 남자가 된다.

 이 영화를 보니 3년 전에 보았던 ‘The Reader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2차대전 당시 나치의 형무소를 지키던 여자는 글을 읽지 못했다. 수감된 유태인들이 여자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차 안내원으로 살아가던 여자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여자는 소년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아무도 여자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후에 여자는 나치에 협력한 죄로 감옥살이를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발설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소년은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여자에게 책을 읽어 녹음해 보내준다. 남자가 보내주는 테이프를 열심히 듣던 여자는 어느 날 책을 꺼내 들고 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책에 적힌 글자를 대조해 가면서 혼자서 책 읽기를 깨치고, 마침내는 아주 서툰 글씨로 남자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주인공인 엄마 역시 문맹이다. 엄마는 아들에게서 편지가 오면 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편지를 읽게 했고, 그 딸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받아 적게 했다. 그 편지를 받아 적던 딸이 소설가가 됐다. 엄마는 딸이 쓴 소설을 읽고 싶었다. 엄마는 자신이 자원봉사로 일하는 고아원의 사회 복지사에게 눈이 침침해져서 읽기가 어렵다며 책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부탁한다. 엄마는 그렇게 문맹인 채로 가족들을 돌보다 사라졌다.

 내 고향 시골 마을에 살던 윗집 아주머니 생각이 난다. 어쩌다 우체부가 편지를 놓고 가면 아주머니는 편지를 들고 우리 집으로 서둘러 오셨다. “눈이 침침해서 그려, 이 편지 좀 읽어 주소.” 그러면 우리 식구 중 아무나 편지를 큰소리로 읽어 드렸다. 때로는 할아버지가, 때로는 고모가, 때로는 나 같은 어린 꼬마가 그 편지를 읽었다. 우리는 이웃 아주머니가 가져오는 편지를 큰 소리로 읽어드리며 기쁜 소식에 함께 기뻐했고, 슬픈 소식에 함께 슬퍼했다.

 내가 아이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하여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었고, 몇 해 후에는 읽기를 배운 아이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엄마인 나를 위하여 책을 읽어주었다. 돌이켜보니 내 아이들이 종알종알 소리내어 내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것이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책 읽기였던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하여 소리 내어 책을 읽는 행위에는 함께 나눈다는 공감의 정서가 흐른다. 책을 읽기에 좋은 가을이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조롱조롱 책을 읽어 주고 싶다. 하늘이 높다.

2011,9,28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