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9. 7. 19:5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56484


최근 고려대가 사건 발생 108일 만에 동료 여학생을 성추행 한 남학생 전원에 대하여 ‘출교’라는 조치를 취했다.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만다. 사필귀정.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아직도 희망의 다른 이름일 수 있겠다.

 피해자였던 여학생의 증언으로는, 어느 사이에 술이 깨어 동료 남학생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파악을 했을 땐 너무나 망신스러워서 짐짓 모르는 척했다고 한다. 그는 추후에 증거자료와 함께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 하였다.

 이 사건보다 몇 달 전, 서울의 심야 전철에서 술에 취한 여성이 머리를 무릎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옆자리의 남성이 그 여성의 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 넣는 것이 누군가의 카메라에 찍혔다. 이 사건은 문제의 남자가 수사망이 좁혀져 온다고 판단하고 겁에 질려 자수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피해자였던 여성은 정말 술김에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 피해자 여성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창피스러워서 모르는 척 했다’는 진술을 했다.

 혹자는 “누군가 내 몸을 만지고 있는데 그것이 창피스러워서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의문을 표할 수도 있겠다. 한 술 더 떠서 “좋아서 가만히 있었겠지?” 하고 농담을 하러 들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기 전에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국의 모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의 일이다. 학교의 교무주임 선생님이 내게 각별히 신경을 써주고 친근하게 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교무회의를 마치고 나서는데 그 선생님이 내 엉덩이를 툭 건드리며 웃는 것이다. 나는 기분이 상하고 망신스러웠다. 그래서 모르는 척 외면하고 그 자리를 떴다. 이튿날 교무실에서 스치면서 그 선생님이 내 손을 만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오물을 뒤집어 쓴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다음날, 그 선생님이 보이길래 손을 뒤로 감췄다. 손을 만질까 봐 무서워서. 그는 내가 뒷짐 진 손을 일부러 만지고 지나갔다. 그 때 나는 이 ‘더러운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아졌다.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처녀도 아니었고, 애 둘을 낳아 키운 ‘아줌마’였다. 그런 나에게도 남이 내 손을 허락 없이 만지는 일이 죽고 싶을 정도로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나 학교 안가! 더러워! 다른 직장을 찾아 보겠어!” 며칠 혼자 끙끙 앓다가 마침내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자 남편이 제안을 했다.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러시나. 그냥 그런 식으로 현장에서 도망치지 말고, 그 선생님을 만나서 정색을 하고 이야기를 해보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만들라는 말이지. 그런데도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그 때는 내가 나서겠어. 그런데, 일단 혼자 힘으로 이 상황을 정리해보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도망을 다닐 건데?”

 남편의 조언에, 없던 용기를 쥐어 짜내어, 그 선생님과 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정색을 하고 ‘내 몸에 손 끝 하나라도 닿으면 불편하니까, 그러지 마시라’고 설명을 했다. 그 선생님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고 사죄를 했다. 그 후로 그 선생님은 내게 깍듯이 예의를 차렸고,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할 만한 행동은 일체 하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 역시 불쾌한 상황에서 도망치는 대신에 내가 수습하는 방법 한 가지를 배웠다.

 나는 지금도 타인이 나를 건드린다거나 신체적으로 스치는 것에 대하여 매우 민감해하고 불편해 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제는 말 없이 도망치기보다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과 대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조차 입을 떼고 말하는 것이 여성들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무진장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물며 형제같이 믿고 있던 친구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사람의 심정이야…. 지옥같은 상황에서 용기있게 자신의 문제를 항변한 고려대 의대 여학생에게 심심한 응원을 보낸다. 용기있게 공부 마치시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 주십사 당부 드린다.

2011, 9, 7, 수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