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8. 24. 22:5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48073


 지난 주 중앙일보 유승림 기자가 기획 보도한 아주 특별한 기사가 있다. 이 특집은 ‘애난데일 한식당서 부당대우, 3주 만에 그만둔 로잔나씨. 인간 이하 취급, 밥도 서서 먹어’를 시작으로 네 편의 기사를 담고 있는데, 일부 한인 업소에서 일어나는 남미계 노동자 ‘차별’의 현장을 스케치하고 이들이 구제 받을 수 있는 방법이나 혹은 이민족에게 동등한 대우를 펼치는 모범 사례까지 담아내고 있다. 이 기획보도를 놓치신 독자는 온라인 기사를 다시 볼 수 있다.

 지난 화요일에 ‘로잔나(가명)’의 사례가 소개 되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로잔나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기 보다는, 이런 사례를 신문에 보도할 수 있었던 기자나 편집팀의 용기에 놀랐다고 할 만하다. 미국사회에서 일부 한인들이 이민족에게 그들이 법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이것을 문제시할 때, 문제에 빠지는 이가 내 친구이며 내 이웃일 때,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지난주 칼럼에서 영화 ‘The Help’에 나타난 흑백 차별의 문제를 언급 한 적이 있다. 1960년대 백인 가정에서 일하던 흑인 하녀들은, 자신들이 받는 직장에서의 차별 문제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워하였다. 백인 사회의 조직적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이 이 부당한 차별 문제에 눈을 뜨고, 흑인 하녀들이 당하는 것을 사회에 알리려고 했을 때, 정작 흑인 여성들은 그나마 직장과 목숨을 잃을까 봐 입을 다물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이 세상에 이 뿐은 아니리라. 우리는 공동의 부끄러움에 눈을 감고 싶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내가 알고 있는 일부 사례들이다.

 영희(가명)씨가 일하던 모 식당에서는 한국인들과 남미인 종업원들이 있었는데, 불법으로 일하는 한국인들조차 남미인 종업원들을 마치 머슴 부리듯 했다. 영희씨는 이런 현상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부지런한 라티노 친구와 서로 도우며 지냈다. 그러자 주변에서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라티노와 친하게 지내는 것에 대한 주위 한국인들의 눈총을 견디기가 쉽지 않아서 결국 영희씨는 동료 라티노 친구와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다.
 
철수(가명)씨는 한인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에 그는 똑같은 시간제 종업원이면서 굳은 일은 ‘당연히’ 라티노들에게 시키고 한국인들이 라티노에게 기분 내키는대로 욕설을 하거나 함부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 분개했다. 그래서 동등하게 일하고, 동등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철수씨 역시 힘들고 지저분한 일은 라티노 친구에게 미뤄버리고 편한 일을 골라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이렇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일하다 보니 저 자신도 그렇게 변하더라고요….”

 내가 어릴 때 내가 뭔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 엄마는 조용히 나를 데려다 놓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다시는 절대 그러지 마라. 이것은 너하고 나만 아는 일이다. 네 형제들도 모른다.” 엄마는 이 한마디로 나의 과오를 용서했다. 종갓집 맏며느리면서 네 명의 자녀를 키워낸 엄마에게는 이런 식의 비밀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발설되지 않는 개인의, 집안의 부끄러운 과오와 실수들. 이런 것들을 덮어주고 엄마는 살아오셨을 것이다. 우리들은 그렇게 덮어주고 용서해주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덮어주고 쉬쉬하고 넘어가서 해결되는 문제가 있고, 덮어주기 때문에 더욱 부패하고 악화되는 문제들도 있는 법이다. 상대가 어쩔 수 없는 약자이기 때문에 밟으러 든다거나, 동등한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짓밟는 현상, 이러한 것들은 우리끼리 쉬쉬하고 넘어간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유승림 기자의 용기 있는 기획취재에 박수를 보낸다. 그 용기만큼 우리 사회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2011년 8월 24일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