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엄마2011. 6. 27. 06:15


국립 미술관 1층에 전시된 백남준의 '엄마' 앞에 앉아있는 엄마.



일요일에 국립 미술관은 오전 11시에 문을 엽니다. 그 시각에 맞추어 집을 나섰습니다. 차를 미술관 맞은편의 의회의사당 주차장에 모셔놓고 국립미술관 동관으로 향합니다. (동관은 현대미술, 서관은 고전미술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동관과 서관을 잇는 통로입니다. 지하에도 통로가 있습니다. 저기 보이는 피라미드는 지하 통로 카페테리아를 환하게 비추는 천창입니다.




동관 입구에 백남준 특별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습니다.



칼더의 초대형 모빌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엄마.




미술관 입구에 마련된 휠체어를 대여하여 (무료) 네시간 가까이 휠체어에 엄마를 태우고 동관과 서관을 종횡무진 돌아다녔습니다. 동관의 현대미술 전시는 상세히 보면서 설명을 해 드리려고 애썼고, 서관의 미술품은 몇가지 집중적으로 설명해드리고 건성건성 돌아다녔습니다.

휠체어를 밀고 다니다보니 미술관에서 장애인 휠체어 시설에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휠체어가 못사는 곳이 없도록 설계를 해 놓았습니다. 엄마는 가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일어난 시간 외에는 실내에서 휠체어를 타고 씽씽 돌아다니셨습니다.  그걸 타니 이 넓은곳을 다 본다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니가 힘들어서 어떻게 하니?"하고 걱정을 하셨는데, 휠체어 미는게 뭐가 힘이 드나요.  엄마 부축해서 걸어돌아다니는 것이 힘이 들지요. 나도 휠체어 덕분에 아주 가볍게 돌아다닐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왼쪽 리히텐스타인, 오른쪽 라우센버그의 작품들


왼쪽에 솔레윗의 입체 작품이 보입니다.



마티스의 전시실에서 입이 벌어진 유여사. 




스텔라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입니다. 스텔라 작품 앞의 엄마.


서관으로 이동.  피카소 초상화 앞에서 꼭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셨는데, 사진 상태가 안 좋습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도 꼭 사진을 찍어달라고, 일부러 휠체어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구경을 다 하고, 나와서 피라미드에 가 봅니다. 엄마에게 "이 피라미드 아래가 지하 카페야. 거기서 우리가 간식을 먹었어" 하고 설명을 해드려도 잘 이해를 못하십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 눈을 유리창에 대 보면 실내가 들여다보입니다. 나는 엄마에게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엄마가 나를 따라서 들여다보더니, "그렇구나. 저기가 지하구나!" 합니다.

엄마는 소학교 졸업이지만, 보통 사람의 교양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풍으로 뇌 수술을 한 이후에 엄마의 언어는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엄마는 내가 '피라미드'라고 말을 해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냥 지나치려다가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에, 다시 설명을 해 드립니다. "이걸 피라미드라고 해, 엄마. 피라미드. 옛날에 엄마는 피라미드가 뭔지 알았어."

엄마는 피라미드를 거울삼아서 둘이 사진을 찍는 것을 무척 신기해 합니다. 어떻게 내가 나를 찍었는지 신기한 모양입니다.


피라미드를 측명에 놓고 이렇게 사진 장난을 쳐 봅니다. 엄마는 이 자신이 아주 맘에 든다고 합니다. 신기한 사진이니까.


엄마를 모시고 다니다보면, 성질 급한 내가 '확' 성질이 오를 때가 참 많습니다. 대개의 경우, '너무나 유식한 (?) 나와, 아는 것 마저 많이 잊어버리고 언어도 어눌한 엄마 사이에는 소통의 장애가 큽니다.  엄마에게는 아주 사소한 것도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귀도 약하시므로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반복해 나가다 보면 나도 지치면서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럴때 얼른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합니다.  엄마는 어릴때 나를 가르쳤고, 그 덕분에 내가 자라서 이만큼 잘난척을 있는대로 늘어놓고 있는데, 엄마는 나이가 들어서 이제 많은 것을 잃고 잊고 그랬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엄마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답답한 소리를 할때 화딱지가 나지만,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에게 아무 설명도 안하고 그냥  돌아디닐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엄마가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리고 자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엄마도 죽을때까지 정신줄을 놓으면 안되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장해야 하는 존재이니까.

나는 이렇게 똑똑한데, 엄마는 왜 이렇게 답답한가... 이런 생각이 들때, 옛날에 엄마가 나에게 읽기, 쓰기를 가르쳤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합니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충 씻고는 잽싸게 침대위로  올라가서 지금 크르렁 크르렁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습니다. 늙은 아기입니다.


(그래도, 내가 인간이 되느라고, 예전보다 성질을 덜 내는것도 같애...)

아, 이제 멸치국물 내서 국을 끓이고...저녁을 기름지게 지어서 저 늙은 아기를 잘 먹여야, 기운이 나시겠지요.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