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1. 6. 19. 23:45




날이 잔뜩 흐려서 배낭에 우산 하나를 찔러 넣고 이른 아침에 포토맥에 나갔다.  일곱시부터 걷기 시작하여 조지타운에 이르러 스타벅스에서 아이스티를 한잔 사 마시고 조지타운 하버에서 산책을 하다가 반환하려 시계를 보니 여덟시였다.

돌아오는길에 '나의 오디나무' 아래서 아직 작은 병아리인 거위 새끼 두마리를 거느린 거위부부를 만났다.  처음에 이들은 나를 경계하고 부리로 쪼려는듯 색색 외치며 나를 몰아내려 했다.  나는 나무 그늘에서 오디를 따서 먹다가 잘 익은 오디를 이 거위들에게 던져 줘 보았다.  거위가 냉큼 받아먹었다. 아하!  그래서 그때부터 검게 익은 오디를 따서 이 부부에게 던져주었다. 새끼들도 내가 던져주는 오디를 쪼아 먹었다.  내가 계속해서 검은 오디를 따서 던져주자, 이 부부는 나에대한 경계를 풀고, 이제부터는 "빨리 오디를 달란말야!" 하면서 꽉꽉대고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기들이 내 발치에 다가와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심지어 부부는 내 왼쪽에 있고, 아기들은 내 오른쪽에, 그러니까 인간인 내가 이들 가운데에 뻗치고 서 있어도 상관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기들을 발로 밟을수도 있는데?!

이들은 달콤한 오디를 따서 던져주는 내가 아주 맘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거위는 사람이 지나칠땐 약간 경계하지만 멀리 도망가지는 않는데, 개가 나타나면 냉큼 물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내 눈에 개가 보이지 않아도, 이들이 물속으로 가버리면, 조금후에 영락없이 개가 나타나는 일이 반복된다.  거위는 사람에 대해서는 안심하는 눈치이지만 개는 경계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거위를 해코지 하는 일은 드물지만, 개는 예측불허라서 그러할 것이다.) 어떤 사냥개가 있었는데, 그 개는 거위가 물에 들어간 후에도 물에 따라가 잡으려는듯 물가에서 으르렁댔다.  그래서 거위가 개를 싫어하는가보다.




이 거위 가족이 물속으로 피신을 한 후에도 내가 물가에서 오디를 따서 물에 던져주자 거위 가족은 나무 밑을 떠나지 않고 내가 주는 오디를 받아 먹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보고 다른 거위 가족이 나타났다. 저쪽 구석쪽에 몸이 많이 자란 두마리 새끼를 거느린 부부.  거위들은 순해보이지만, 일단 '먹이'에 대해서 경쟁할때는 사나워진다.




아래 사진을 보면 왼쪽의 큰 거위가 목을 길게 빼고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위협하는 자세이다. 이렇게 위협을 하면서 다른 거위들을 몰아내려 한다. 이 거위가족은 부모와 새끼들이 합심하여 오른쪽의 아기거위 가족을 몰아댔다. 열세에 있는 작은 거위 가족이 저쪽으로 밀려갔다.  이놈들이 왜 한쪽을 몰아대는가하면,  오디 따서 던져주는 인간의 앞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바삐 오디를 따서 이가족, 저가족 골고루 주느라 아주 바빴다.  그런데 요 거위놈들이 덜 익은것을 따서 주면 안먹고, 잘 익은것을 따서 줘야 받아 먹는다. 나처럼 잘 익은것만 먹는 놈들이다.





내가 나무 밑에서 거위가족들에 둘러싸여 오디를 따 먹이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었던듯, 산책하는 사람들도 미소를 짓거나 사진을 찍어가지고 가곤 했는데, 어떤이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내게 조언을 했다, "그러다가 거위 부모한테 물릴지도 모르니까 조심해..."

이 사람은 동물에 대해서 겁이 많은 사람인가보다.  나도 사나운 거위의 행동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을때 사납게구는 거위는 본적이 없다.  게다가, 지금 거위들은 내 발치에서 오디를 달라고 꽉꽉대고 있는 것이므로, 이들이 나를 쫄리는 없는 것이지. 쫀들, 그걸로 사람이 죽는것도 아니고~   난 거위가 공격적으로 쌕쌕거릴때와, 뭘 달라고 꽉꽉거릴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와 대화 하기 위해서 다가갔다가, 설령 대화가 안통하고, 내가 상처를 입을 가능성도 분명 있다.  하지만, 미리 겁먹고 대화를 포기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상대가 동물일때, 나는 서슴없이 다가가는 편이다.  난 사람보다 동물과 대화하는 편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뇌진탕 걸려서 깜박깜박하는 내 카메라가 빗방울 떨어지는 장면을 잘 잡아냈다. 고맙다 카메라.


















일전에, 다 자라버린 다섯남매 거위 가족 사진을 올린적이 있다. 오늘, 그 거위가족을 다시 발견했다. 멀리서보면 그냥 어른 거위들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중 두마리가 좀더 크고, 아직도 부모가 가장자리에서 호위를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다섯마리가 모두 성년이 된 것이 마냥 고맙다. 마치 내 새끼들을 보고 있는듯 흐뭇했다.






꽃술에 벌이 매달린것을 볼때면, 묘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뭔가 관능적이면서도 포근하다.



새벽에, 한국에서 지홍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CPR 훈련받을때 1등을 해서 포상으로 '가족에게 전화 5분' 를 걸수 있게되었다고, 그래서 내게 하는거라고. 5분 되면 전화가 그냥 꺼지니까, 갑자기 전화 끊겨도 그런줄 알라고.

지홍이는 "엄마엄마!" 이렇게 꼭 두번을 부른다. 지홍이는 늘 그런다. 한번 "엄마" 하고 부르는게 아니라 "엄마엄마" 이렇게 두번을 연달아서 부른다.  한번 부르는 것으로는 성에 안찬다는듯 "엄마엄마", "아빠아빠" 이렇게 부른다. 아기때부터 그러더니 여태 그런다.

며칠전에 둘이 총들고 나란히 선 사진이 카페 게시판에 커버처럼 걸려있다는 얘기를 해 줬더니 (훈련병은 인터넷 못 보니까), 자기는 소대장이고 그 친구는 부소대장이라고 한다. 


"너, 힘들어하는 소대원을 잘 도와주고 돌봐줘야 한다!" 했더니, 자기도 열심히 도와주려고 하는데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도와주기가 어렵다고 한다.

내가 지홍이에게 동료 훈련병들을 돌봐주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1) 남을 돕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나 자신이 튼튼해야 한다. 그래야 남을 도울수가 있는거니까. 따라서, 나 자신의 몸관리를 잘 하라는 뜻이다.
2) 혼자만 잘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변에 힘든 사람을 도울 만큼의 역량을 키우라는 뜻이다.
3) 결국,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운명이다. 그러니 평소에 인정을 베풀라는 뜻이다.
4) 서로 돕지 않는 삭막한 사회는 나에게 해롭다. 결국 내가 잘 살기 위해서 남을 도와야 하는 것이다.

돕는것이,  도움을 받는 것이다.

***

포토맥 강변에서 벌써 1년도 넘게 아침에 나갈때마다 마주치는 두 신사가 있다.  한분은 80쯤 되어보이는 노신사이고 한분은 60안팎으로 보이는 신사이다. 내가 이분들을 신사라고 하는 이유는 이분들이 미국 고전 영화에 나올법한 키가 큰 전형적인 서양 남자들인데 인상도 좋고 늘 일정한 속도로 걷거나 달리거나 한다.  나는 이분들이 '아버지와 아들' 혹은 '장인과 사위' 뭐 그런 관계가 아닐까 상상을 하며 지나치곤 했다. 

내가 체인브리지 방향에서 조지타운까지 갔다가 반환한다면, 이 두 신사들은 조지타운 집에서 체인브리지까지 갔다가 반환하는, 그러니까 나하고 정반대의 산책을 하시는것 같았다.  언젠가 내가 조지타운의 딘앤델루카 카페에서 아이스티를 마시다가 이분들이 조지타운 주택가로 향하는 것을 본적도 있다.

오늘은 한가로운 이른 아침이었고, 포토맥 너른 강이 발치에 보이는 한적한 길에서 이 두분을 마주쳤다. 그래서 "Good morning, gentlemen!" 하고 먼저 인사를 날렸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내게 인사를 보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강변에 서서 가벼운 인사를 하고, 서로 뭐하는 사람인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Lin Yutang 을 아느냐고 물었는데, 가만 듣다 보니까 '임어당' 얘기를 하는것 같아서, 나중에 그를 안다고 얘기를 해 주었다. 그 할아버지는 내게 '중국인'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다른 신사가 얘기에 합세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한국에 American Idol 같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서 22세 청년의 감동적인 얘기가 소개가 됐다" 며 내게 아느냐고 물었다.  이 신사는 한국의 쇼프로그램 얘기를 내게 해주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봤는데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는거다.   아 이 신사들은 조지타운에 사는 이웃 친구들이었다. 할아버지와 그 신사는 변호사라고 했고, 한국 쇼프로 얘기를 내게 들려준 신사는 조지타운 대학 교수였다가 퇴직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강바람을 쐬면서 이런 얘기들을 웅성웅성 하다가 다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길을 갔다.  다음에 또 마주치면 우리들은 또다른 화제로 웅성웅성 하게 되겠지.

(남자들도 '수다'를 좋아해...흠흠...)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걷기에 좋았는데, 혼자 유쾌하게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오른 손을 싹싹 핥고 지나가는거다. 어떤 커다란 개가 줄이 풀린채로 내 곁을 뛰어 지나가며 내 손을 핥은 것이다. (가끔, 개끌고 달리기 하는 사람중에 개를 풀어놓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안되지만.  이 경우 개가 순해서 안심하고 풀어놓은 것이기때문에 겁먹지 않아도 된다.)  뒤에 달려온 개 주인은 내게 무척 미안해 했지만, 나는 깔깔 웃고 말았다.  내 오른손은 거위에게 오디를 따 주느라 검붉게 물이 들어있었고, 그리고 달콤하였다. 그러니까 그 개가 핧았던 것이겠지.

나는 낯선 개가 내 손을 핥고 지나간것에 감동을 받았다. :-) (변태에요. 별 이상한데서 감동을 받아요.) 

나는 대개 혼자서 장거리 산책을 나가지만, 심심한 경우는 별로 없다. 나는 눈에 보이는 나무나 들풀, 지나가는 새들과 이야기를 나눌수 있고, 흘러가는 강물에게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가끔은 지나치는 사람과도 길에 서서 '수다' 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을 한바퀴 돌고 오면, 몸도 마음도 나른해지고 평화로워진다. 나는 이보다 더 좋은 오락을 찾을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고요하고도 은밀하며 유쾌한 산책을 위해서는, 나 혼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산책을 하지 않게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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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