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2. 4. 06:06



케네디 센터에서 열리는 미국 국립 교향악단의 연주회에 다녀왔다.  (2018, 2, 3, 오후 8시). 


1월과 2월에는 우리 가족 모두의 생일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공동의 생일축하 이벤트를 생각하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확인하여 확답을 받고 음악회 표를 산 것은 이미 3주 전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템페스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요정의 입맞춤' 이렇게 세가지 곡이 연주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물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컨체르토가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가장 자주 들어서 가장 친숙한 곡이니까.


찰리는 나를 위해서 휴가를 냈고, 존은 직장에서 넘어져 허리를 삐끗했다고 그렇지만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진통제를 먹고 앓는 소리를 하길래  존의 허리에 약을 발라주고 챨리와 둘이 66 East 를 달려 케네디센터에 갔다.  내겐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것 같은 익숙한 길.  여기 온지도 몇 년 만이다.  뭔가 기분 전환을 위해서 짧은 원피스 드레스도 입고, 정장 구두도 신고,  음악회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따로이 드레스코드가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냥 '기분'을 내고 싶었다.   우리 삶에서, 가끔은, 우리가 아침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고 용모를 단장하듯, 가끔은 뭔가 이벤트를 만들고 예쁜 옷과 예쁜 구두를 신고, 아름다운 것을 음악을 들으러 예쁜 음악당에 가서 오로지 음악만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평소에 향유하지 못하는 뭔가 고양된 것을 경험하거나 즐기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차이코프스키의 '폭풍'은 음악 전체가 '폭풍' 그림 앞에 서 있는듯한 분위기였다.  천둥 번개가 치고 잦아들고 다시 몰려오고 그러다가 사라지는.  나로서는 음악을 들으며 어떤 장면들을 떠올릴수 있어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템페스트가 끝나고 들어온 스타인웨이 피아노.




음악이 시작 되었을때, 찰리와 나는 저도 모르게 서로 쳐다보고 소리없이 '아!' 했다. 


음악에 대해서 특별한 미각이 없는 나는, 피아노 컨체르토 곡이 라디오나 음반에서 흘러 나올때, 대개는 '귀챦아' 하는 편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부담스럽다'는 대체적인 느낌.  아 시끄러... 이런 느낌.  그래서 대체로 솔로 독주나 실내약 정도가 내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 인데,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내가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음악에 눈과 귀가 트인것 같다.  아, 저것이 오케스트라 음악이구나. 


우선 지휘자.  지휘자가 춤을 추듯 발뒤꿈치를 살짝 살짝 올려가며 두 팔을 휘저을때, 그리고 음악당 전체에 아름다운 음악이 흐를때, 내 눈에는 마치 보티첼로의 그림에서 서풍의 신 (제피루스)의 입에서 꽃잎이 터져 나오듯 지휘자의 두 팔에서 음악이 만들어져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악이 그의 두 팔 안으로부터 꽃잎처럼 펴져 나오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음악에 대해 말하면서도 나의 서술은 시각중심이다.)


지휘자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


그리고, 교향악단의 개별적인 연주자들 한사람 한사람이 '음악의 요정'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눈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 지휘자의 춤, 피아노 독주자의 옆모습 표정까지 읽으면서 그 속에서 하나의 우주가 탄생하고, 계절이 지나가는 시각적 경험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시각에 국한 된 경험은 아닐것이다.  소리가 나를 에워쌌고, 나는 소리의 따뜻한 바닷물 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으니까.  음악회에 가서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는 것은 수동적이고 정적인 행위만은 아니다. 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놀고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음악이 끝나갈무렵,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 처럼 머리가 가뿐해지고, 가슴에서 희망이 솟아니며, 잘 살아내야만 한다는 각성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우리 찰리가 새로산 아이폰으로 뭔가 이펙트를 넣어 찍은 사진.  이제 4년차로 들어가는 내 아이폰에는 없는 기능인데.)



찰리에게 말해줬다.


우리의 일상이 똥통같은 현실속에서 구더기처럼 꿈틀대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일년에 한 두번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합해 만들어내는 고양된 예술을 경험하면,  똥통속에 살아간대도 하늘에 태양과 별들이 빛나며, 음악당에서 아름다운 음악들이 연주되고,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며, 바다는 여전히 넘실대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회상' 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훨씬 고양될수 있고, 그 희망을 가지고 순간순간을 견딜수 있는거다.  우리 곁을 맴돌았던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은  쥐새끼만한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그 음악을 들을때라도 '회상'을 통해서 되살아날거다.  우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흐마니노프를 들을때, 우리는 오늘 들었던 천상의 선율을 되살려 낼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어 줄거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2. 1. 23:08




https://www.nbcwashington.com/news/local/Move-Over-Laws-in-Md-and-Va--287360081.html


어제 저녁에 메릴랜드 베이브리지 동쪽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교통경관에게 정지를 당했다.  


상황은 이러하다.  단방향 2차선 한적한 도로를 운전하고 있는데 갓길에 경찰차가 경광등을 켠 채 서 있고 승용차 한대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왜 걸렸지?' 생각하며 마침 차에서 나와 승용차로 향하는 갓길의 경찰이 다치지 않게 매우 조심스럽게 서행하며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왼편 차도로 옮길까 잠시 생각했으나 마침 왼편 차도로 차가 지나가는 중이라 차선을 바꾸기도 약간 애매한 상황이기도 했다. 


문제의 장면을 통과한 후에도, 저만치 뒤에 경찰차가 있는것을 의식해서, 과속에 걸릴까봐 속도도 완만하고 착하게 운전을 하는데 내 뒤로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따라왔다.  "뭐지? 과속도 아니고, 신호등도 없었고, 뭐지?  후면 브레이크등이 나갔나?"  의아해하며 차를 갓길에 세웠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실내등을 켜고

차창을 열고

두손을 운전대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최대한 맑고, 순수하고, 자는 아무 죄가 없으며,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경찰관을 기다렸다. 


경찰이 뭐라뭐라 하는데 내가 잘 못알아 듣겠어서 "뭐라구? 이해 못했는데?" 재차 물으니 그가 설명을 해 준다.  "경찰차가 갓길에 서서 공무 수행중이면 차선을 안쪽으로 바꾸라는 규정이 있는데 네가 그걸 지키지 않고 차선 바꾸지 않은채 지나쳐서 나를 위험에 빠뜨렸다" 는 것이다. 


나 속으로 머리 사사삭 굴리고 있는중, '뭐라구? 이 경우 차선을 바꿔야 하는거라구? 나 미국서 15년 넘게 살면서 한번도 들어본적도 없고, 이문제로 잡혀본 적도 없는데 그런 규정이 있는줄 몰랐어....'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규정이 몰랐어"라고 말하면 뭔가 덤터기를 쓸 것 같아서, "어...옆에 차가 지나가고 있어서 차선 바꾸기가 곤란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지나갔는데..."라고 아주 공손하게 대꾸했다. 


경찰은 운전면허증과 자동차등록증을 가져가더니 일각이여삼추의 천년의 시간이 흐른후에 (그래봤지 한 3분쯤? 후에) 다시 내게 다가왔다. 


"당신이 규정을 어겼지만, 이번에는 그냥 워닝(경고)만 준다. 벌금이나 벌점은 없어. 앞으로 조심해서 운전하기 바래." 


아싸! (할렐루야).  그 메릴랜드 경찰님께서! 스파이더맨의 토비 매과이어같이 잘생긴 분이었는데, 마음씨도 비단결이었어!  사실 나는 쫄아가지고 그 사람의 용모에 대한 평가를 할 겨를이 없었는데, 옆좌석에 있던 찰리가 "되게 잘생겼네...내 또래이겠는데, 진짜 미남이다..."해서 정신이 번쩍 나서 그의 잘생긴 외모를 회상했다.  하긴 잡아 놓고 방면해주는 경찰님이면 천하의 못생긴 돌쇠라도 미남으로 보일걸 아마. 


그이는 왜 나를 잡아 놓고 경고만 주고 보낸걸까?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내 차와 면허증을 조회해보니 내 차나 내 면허증이 지난 2년이 넘는 기간동안 무엇하나 걸린 것 없이 깨끗했을 것이다.  거의 나가서 살았으니까, 깨끗할수밖에.  물론 그 전에도 경미한 몇 건 외에 거의 전과가 발견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관대하게 봐준것이 아닐까?


(2) "옆 차선에 차가 지나가서 차선 옮기기가 어려워서 너 다칠까봐 살살 지나갔는데..." 내가 우물거렸던 설명도 '무죄 방면'에 힘을 실어 줬을 것이다.  이 법규에 관한 사항을 찾아 읽으니,  옆차선이 바빠서 옮기기 힘들때는 조심조심 지나가라는 내용이 나온다. 정상참작이 되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위의 링크된 설명을 보면 100달러의 벌금을 물을뻔 했는데, 무죄방면 되었으니 무조건 고마운 것이다.


그래서 한가지 배웠다.  경찰차가 갓길에 어떤 차 잡아 놓고 작업하고 있을때, 혹은 사고차 수습중에 그곳을 지나칠때는 차선을 안쪽으로 옮겨야 한다. 그들의 안전을 확보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무심코 그렇게 행동 했던 것도 같다. 그냥 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상식적으로.)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2. 1. 10:54



메릴랜드주의 오션시티는 워싱턴 디씨에서 가장 가까운 대서양 연안 해안이다. 50번 국도를 타고 '끝까지' 줄창 가면 나오는 바닷가 도시.  오후에 베이브리지를 건너 달릴 무렵 차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구나. 바닷가에 가면 눈이 쌓여 있으면 좋겠다.  눈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목욕을 하면 좋겠다.  양희은 버전의 '눈이 내리는데'와 오리지널 최무룡씨 버전의 눈이 내리는데를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면서, 눈이 내리는 분위기를 즐겼다.


그런데 오션시티에 도착하니 오히려 흐리던 하늘이 개이고, 미국 역사 150년만의 슈퍼 블루문 개기월식에 맞춰 달이 휘영청 파도를 밝히고 있었다.  달빛으로 환했던 방 안.  





워싱턴 지역의 월식 시각은  오전 7시 50분으로 예보 되어 있었는데, 해가 이미 밝게 떠올라 있어서 달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그 달을 보려고 새벽 네시부터 일어나 호텔 방문 맞은편 복도에서 서성이며 월식을 기다렸다. 월식을 볼 수 없어도, 이제 곧 시작될 그 달이라도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동쪽 정면으로 향한 객실 가득 햇살이 들어왔다.  그 햇살만으로도 눈부시고 따뜻했던 실내.  어제의 눈내리고 바람불고 춥던 날씨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봄날같은 겨울 아침이었다. 



아이패드로 음악을 틀어놓고, 볕이 따뜻한 창가에 앉아 수도쿠를 풀었다.  12층 아래, 대서양이 출렁댔다. 빛은 깊게 깊게 방안으로 들어와 내 온몸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이 밝고 따뜻한 장면을 오래 오래 오래 오래 기억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나의 우울과 근심과 추위를 모두 녹여주는 빛과 따뜻함의 시간이었다.





오션시티는 남북으로 해안을 따라 보드위크와 모래 비치가 형셩된 곳인데 보드워크 직선길이가 2.45 마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보드위크 북쪽 끝보다도 더 윗쪽에서부터 남단까지 슬슬 산책하며 한바퀴 돌았다.  약 5마일 걸은 듯.  해변을 맨발로 걸으며 전에 묵었던 호텔 앞에 서서 - 전에 어느방에 묵었을까? 기억을 되짚어 찾아보기도 했다.  


오션시티는 텅 비어 있는듯 했다. 우선, 내가 묵은 호텔이 이곳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호텔인데 식당이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간이 매점만 한군데 열려 있었다. 수많은 바닷가 호텔중 문을 열고 손님을 받는 호텔 숫자가 한정되어 있었고, 전 구역이 거의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See you in March! 라는 표시들이 많이 보였다.  이 도시의 호텔이나 상점들은 대략 3월부터 봄, 여름, 가을 장사를 하다가 겨울이 오면 아예 문을 다 걸어 잠그고 영업을 안하는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잭 니콜슨'이 주연했던 영화 '샤이닝'의 상황을 일해 할 수 있었다.  정말로, 계절의 타는 휴양지에서는 호텔이나 가게들이 아예 싹 철수를 해 버리고 휴양지 자체가 유령도시처럼 텅 비고 마는구나.  보드워크 남단에는 어뮤즈먼트 파크 (유원지)가 있는데, 그곳에 있던 '하늘차'도 사라지고 없었다.  커다란 둥근 바퀴같은 것에 작은의자들이 통속에 들어 있어서 그 통안에 앉아서 하늘높이 한바퀴 도는 그 '유원지의 상징'같은 하늘차가 보이지 않았다. 겨울동안 분해해서 치우는 모양이다.  오션시티에 가서 하늘차가 보이면, 그것을 타리라고 생각했는데 하는수 없었다.


그러니까, 텅 빈 바닷가 휴양지에 나 혼자만 있는것 같았다. 햇살은 투명하고, 따스하고, 갈매기들이 와서 말을 걸고, 대서양의 파도는 힘차게 일렁이며 흰 거품을 뿌리고 깔깔대고. 파랑. 파랑. 파랑. 파랑. 파랑. 




음, 나는 아래 사진을 5/7 사이즈로 인화하여 액자에 담아 연구실에 걸겠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보면 힘이 날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