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3. 6. 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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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eel like I am back to my Walden pond (Thoreau's).

Rain falls on the lake and I am walking under the canopy.


feels so good.



메릴랜드에 사는 동안 내내 그리워 하던 버크 호수.  비가 슬슬 뿌리는 아침에 길을 나서다. 숲 속에 들어가면 웬만한 비는 피할 수 있으니까.


이제부터 나는 이 호수를 소로우의 '월든 호수'라고 부르기로 했다.  물속을 헤엄치듯 온몸을 촉촉하게 감싸던 숲의 향기, 빗 방울이 숲 위에 떨어지는 소리.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3. 6. 8.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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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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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매우 흥미로웠던, <금시초문>이었던 내용은 러시아 성화에 나타나는 <물구나무 선 원근법> 제하의 '시각'에 관한 설명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교육받으면서 배우게 되는 것이 멀어질수록 -- 소실점에 가까워질 수록 짧아지는 대각선을 마주 하는 형식의 원근법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성화에 나타나는 그림들은 그러한 서양식 원근법의 기준으로 보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위의 첫번째 그림 속의 테이블은 둥근 곡선 형태를 취하고 있는 면이 실제로는 직선 이라고 한다.  곡선이 직선이라니?  책의 저자는 굴절된 인간의 눈동자의 예를 들어 --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사물이 직선 형태가 아닌 굴절된 형태일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직선으로 보는가 곡선으로 보는가 하는 것도 문화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교육받은 문화권은 서양식 원근법의 세계였으므로 곡선으로 그려진 직선 상황이 낯설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당시의 러시안들에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옛날에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보던 시절, 우리는 티브이에 어리는 상이 굴절되어 전해진다는 것을 직접 확인 할 수 있었다.  오목, 볼록 렌즈에 비친 상이 늘어나거나 줄어들며 굴절된다는 이치도 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 그러면 '어째서' 러시아 사람들은 직선을 곡선으로 인지하거나 곡선으로 그려야만 했을까? 저자인 진선생은 러시아 사람들의 굴절된 직선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이 장을 마쳤다.  왜 러시아 사람들의 시각이 그러한지, 설명이 필요한데...  


이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던 중, 그것이 러시아의 자연 환경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러시아의 농부는 한 없이 펼쳐진 벌판에서 아침을 맞고, 밭을 갈기 시작하여 해가 서쪽에 지면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다시 아침이 오면 온종일 밭을 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 벌판이 하도 넓어서 영원히 그런 삶이 지속된다고.  그러면 러시아 농민 중에는 착란을 일으켜 끝도 없이 서쪽으로 향해서 걷다가 쓰러져 죽기도 한다고 한다.  그것이 소설속의 에피소드이므로 허구인지 사실에 바탕한 것인지 나를 알지 못한다.  한가지, 한없이 펼쳐진 러시아 평원을 상상 해 볼수는 있다.


한없이 펼쳐진 평야지대, 밭 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보라. 세상은 네모가 아니라 둥글다.  '사방'을 둘러볼수없다. 세상은 네 귀퉁이 '사방'이 아니고 원방이니까.   내가 몸을 한바퀴 돌려봐도 그저 저기에 지평선이 펼쳐져 있을 뿐이므로 세상은 둥글게 보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내가 앉아,  저쪽에서 걸어가는 이, 그 둥글어 보이는 지평선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 곡선위를) 걷는 이를 바라볼때, 내 눈에 그는 곡선을 걷지만, 걷는이는 직선으로 걸을 뿐이다.  직선은 '곡선'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니 휘어진 '직선'을 러시안들은 자연스럽게 수용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아래쪽 그림.  테이블에 올려진 접시들이 테이블의 가장자리에 있다. 러시안들은 이렇게 그림을 그려놓고 그 접시들이 테이블의 중앙에 있다고 인지한다.  우리가 보기에 낭떠러지 같은 가장자리에 위치한 것을 그들은 '중앙'이라고 받아들이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이 문제 역시, 나는 러시아 평원에서 답을 찾는다. 


농부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서 일을 하는데 해가 뜨겁다. 농부는 저 지평선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를 본다. 저 나무그늘에 가서 쉬어야지. 지평선 (지구의 끝)에 있는 나무.  농부가 나무에 도착했을 때, 농부는 그 나무 너머에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발견한다. 나무는 내가 보기에 가장자리에 위치했으나, 실제로는 지구의 중심에 있는거다.  그러므로 러시안들은 테이블의 가장자리에 접시를 그려놓고 그것이 중심에 있다고 인지할 수 있는거다. 


여기까지는 이 책을 읽고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편 나의 추측이다.  


밭고랑이 수마일씩 이어진 그런 평원에 나가서 그 평원에 서서 세상을 보면 거기서 보이는 세상은 도시의 빌딩 아래에서, 혹은 울창한 밀림지대에서 보는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도심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의 직선거리는 그저 직선일 뿐이다.  평원에서 지평선의 이쪽 점과 지평선의 저쪽 점 사이의 거리는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다.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3. 6. 8.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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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326



모더니즘 편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러시안 아티스트들이 주축이 된 constructivism 아트와 관련 된 것이다.  1923년 '모홀리 나기'가 '전화 통화'만으로 제작했다는 작품.


작품에 대한 '지시'를 하면 제 3자가 작품을 제작한다는 점에서 미국 개념주의 작가 '솔레윗'을 떠오르게 한다.  (솔레윗이 영향을 받았겠지.)


그러니까,  두 사람이 동일한 '표'를 갖고 있고 '갑'이 전화를 걸어서 지시를 하면 '을'이 지시하는대로 동일한 표에 따라서 무엇을 만들어 낸다는 원리인데,  작품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끝나는데 --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의문  -- 그래서 정말로 갑이 말하는대로 '을'이 행동했을까?  정확히 일치 했을까?  정확히 일치 하지 않았다면 -- 그 결과물에 대한 갑의 입장은 어떠할까?  정말로 '을'은 갑의 '하수인/수족'에 불과한 걸까?


가령 갑이, "색상표에서 A1245 번을 선택하여 5센티 정사각형을 제작하여 *** 지점에 붙이시오" 라고 지시했는데 을이 잘 못 알아듣고 A1242색을 사용했다면?   갑은 이를 '우연한 창조'로 보고 수용했을까? 아니면 폐기 했을까?  그의 입장은 어떠한 것인가?


언어학에서 컨스트럭티비즘의 원조를 얘기 할때 주로 러시아 학자들을 논하는데, 미술사에서도 역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언어학습 수업에서도 이런식의 '텔레폰 페인팅'과 흡사한 작업을 하는데 여태까지는 말로 서술하고 각자 주관적으로 그것을 해석하여 그려내는 선에서 중단되곤 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학생들에게 정확한 측량도구 (자)나 표 따위를 주고 좀더 공학적인 언어 훈련을 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재미있는 실험이 되지 않을까?  


미술 책 보면서 전공 생각.  책이 주는 힘.  책은 힘이다.  


고전 예술이나  후기 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서는 나도 어떤 체계적인 인상을 갖고 있던 편인데 '모더니즘'이라 불리우는 미술사의 한 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었다.  고전예술은 중고등, 대학, 그 이후에도 책들을 통해서 교양을 쌓았고, 현대(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자주 미술관 다니면서 직접 만나는 편이니까, 혼자서 공부도 했으니까 가늠이 되었는데 그 중간지대가 애매했던 것이지.  대체로 그 주축이 러시아와 유럽이었기 때문에 내게 낯설었던 것도 같다.  이제 좀 가늠이 된다.  어렴풋이 가늠이 되는 정도만으로도 만족 (책은 또다시 열어 볼 수 있으니까.)


이제 즐거운 3편.  이미 내 눈에 익숙한 작품들이 망라가 된 3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편'으로 간다.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3. 6. 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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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wikipedia.org/wiki/The_Birth_of_Venus_(Botticelli)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작품 년도가 1800년도로 표기 되어, 위키 피디어를 찾아 보았다.  1486 년을 1846년으로 잘 못 표기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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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은 책들이라 꼼꼼하게 읽는 중.   이런 좋은 책들을 읽으면,  국립 미술관에 나가 전시품들을 보고 싶어지지. 


유튜브를 뒤져보니 이 책 시리즈와 관련된 진씨의 강의 자료들도 많이 나와 있어 생생한 목소리도 듣고, 책도 읽고, 입체적인 공부.  진씨는 말을 조금 천천히 하면 전달력이 더 좋아질 것도 같다. 아마도 아는게 너무 많아서 그걸 전달하려고 애쓰다 보니 저절로 말이 빨라지는 모양이다. 성격이겠지. 동영상에서는 '이놈/저놈' 하는 거친 표현들이 귀에 거슬리는데 -- 책에는 거슬리는 표현들이 오르지 않아서, 책이 좀더 평화롭게 느껴진다. 그가 책의 언어로 말을 하면 훨씬 듣기에 편안 할 것도 같다.  이런 좋은 책들을 내 주시니 고마울 따름.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3. 6. 6.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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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박선생이 '맛있게 먹으라'고 보내 준 나의 영양간식.  오랫만에 책에 자대고 줄 긋고 메모 해 가면서 맛있게 먹는 중.


서양 미술사 책 세권하고 미학책하고, 진 선생 책을 네권이나 보내주심.  





책 값 안 아까와요. 


2013년 6월.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