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11. 9. 14:55

세상물정의 물리학, 김범준 지음

복잡한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계물리학의 아름다움


집에 있길래 읽었다 (우리 집에는 그냥 와서 쌓이는 책이 많으므로 독서 잡식이 용이하다. 내가 서점에 나가서 사온 책은 아니다.) 첫 장 '뒷담화를 권한다'가 인상적이라서, 대충 끝까지 읽었는데, 이 책은 물리학하고 상관없이 사는 보통 사람이 가방에 가지고 다니다가 전철에서 앉아 갈때 꺼내서 여기 저기 그냥 기분 내키는대로 읽기에 적당한 책이다. 챕터별로 토픽이 바뀌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주제도 다양한데 공통점은, 세상의 잡다한 현상을 수식화 하거나 그래프로 설명을 해 준다.  '왜 그래프나 도표가 필요한가?' 저자에게 물으면 아마도 저자는 '그냥 궁금해서...'라고 대답할 것이 틀림없다. 


그냥 심심파적으로 읽다가 특히 내 눈길을 끈 것.


내 이름도 눈에 띈다. 빈도수가 높은 이름이니 좋게 말하면 '인기 있는, 선호하는 '이름이고, 나쁘게 말하면 '진부하고 흔해빠지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여자이름이라는 말이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내 절친한 친구 두명은 60년대에 유행했던 이름이고, 내 이름은 그래도 70년대 이름이라는 정도.


크아, 저것이 밤하늘의 별자리라면, 내 이름은 어딘가 좀더 영롱하게 빛나는 것 같구나!  (자기도취) 


이 통계 물리학자가 남자이름은 조사를 안하고, 여자이름만 주무른 이유는 그가 딱히 페미니스트라서가 아니고, 한국 남성 이름은 '항렬'자를 따르는 경우가 많이서, 이름에 이떤 사회성의 변수가 들어있으므로 여자이름에 비해서 고유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했다.  지원, 은지, 민지, 바야흐로 '지'녀들의 이름이 이 도표에서 가장 최근 유행 패턴인듯 하다. 


음...물리학에서 별걸 다 들여다보는구나, 확인하는 정도.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나는 일자무식이라 그냥 대충 봤다.  그래도 한가지 배운것이라면 -- 내가 가진 자료들도 그래프로 옮길수 있도록 데이타시스템을 만들고 살펴보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귀챦은 일이지만 의미있는 일임을 새삼 깨달았다.  


이름에 대하여 

며칠전 내 이름에 대하여 잠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나는 어릴때 내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딘가 밋밋하고 개성없고 힘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시시하고 한심해 보이는 이름이었다.  내 성까지 붙여서 내 이름을 읽거나 말하면 격한 소리가 없고 그냥 맹숭맹숭하다. 혜진이라던가 진주 뭐 그런 이름이 부러웠다. 내 이름은 영 맹숭맹숭했다.  나는 대학생 시절에도 그 이후에도 영 내 이름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내 이름에 대해서 내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뀐 시기가 언제 쯤일까? 나는 정말 내 이름이 나라는 사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래서 일부러 '남자'를 연상시키는 별명까지 만들어서 사용하곤 했는데, 대학원 시절에 나의 지도교수께서 내 이름을 참 예쁘게 불러주셨다. 그분은 모든 외국인 학생들의 고유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는데, 특히 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내 이름을 아주 정확하게 발음하며 내 이름을 불러줬다. 그리고 그이가 내이름을 부를때 내 이름이 참 곱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가 40을 넘기면서 나는 개성없고, 기운없고, 싱겁고,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내 이름의 '소리'가 슬슬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발음하면, 어딘가 뽀얀 우유 크림 같기도 하고, 은은하고, 부드럽고, 모가나지 않으며 튀지 않으며 태생부터 고귀한 것 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은은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고

고요하고

튀지 않으며

부드럽고


세상의 온갖 모든 부드럽고 은은하고 아름다운 요소들을 다 갖다 붙여도 모자라는 그런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내 이름이 참 우아하지 않아?" 운전대를 잡은 내가 묻자 디오게네스 선생이 한숨을 푹 내 쉬며, 낙엽지는 창밖을 내다보며 혼잣말처럼 대꾸했다, "그렇지...그게 문제였지...그 이름에 깜빡 속은거지...."


그렇다, 그게 문제였다. 어릴때 내 불만처럼, 내 이름은 그 느낌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간에 도통 나하고 안 어울린다.  

(이름의 느낌)    vs  (사람의 느낌)

은은하고   ... 거칠고

우아하고  ... 시끄럽고

아름답고 ... 무섭고 

고요하고 ... 번잡스럽고 

튀지 않으며 ... 튀고, 충동적이며 

부드럽고 ... 불같이 성을 내고 


뭐, 디오게네스가 가까이에서 살아보면서 경험한 실제 사람에 대한 주관적/객관적 평가가 이러할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사기결혼을 당한 것 같다는거다. 사기 친 사람은 없다. 자신이 속았을 뿐. 하하하. 


사실 디오게네스가 인지하는 내가 실제 나의 본질에 가깝다. 싱크로율 백퍼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을 해 보았다. 본래 이러한 사람에게 왜 '이따위 (이렇게 우아한)' 이름을 지어준걸까?  이것이 혹시 '악마의 한수' 혹은 '신의 한수'가 아닐까? 이런 밑도 끝도 없고 타당성도 없는 생각을 혼자 해 보게되었다. 


내가 본래 '청룡'의 운명을 띄고 태어난 존재인데, 내 '청룡'의 운명을 내 '이름'으로 결박지어놔서, 내가 승천을 못하고 지금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상태로 숨을 헐떡이고 있는 모양새가 아닌가?  (역학관 성명풀이 선생들이 아마 나를 요렇게 꼬셔댈지도 모른다. 비싼돈 들여서 이름을 바꾸면 장차 이나라의 황제가 될 운명을 타고 났다고.)


상상가능한 가설 (1) 내 이름을 지으신 내 아버지가 여러가지를 보는 눈이 있어가지고, 내 팔자가 사나울까봐 부드럽고 유약한 이름으로 거친 운명을 눌러 놓으셨다.  (2) 내 이름 때문에 청룡의 운명을 타고난 내가 숨을 제대로 못쉬고 끙끙 앓고 있다.  (3)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당장 이따위 농담을 집어 치우라!


만약에 내 이름이 내 남자형제들과 동일한 항렬자를 붙여서 '희열'이나 '강열'이나 뭐 그랬다면, 나는 조금 다른 인생을 살았을까? 알수 없는일.  하여간 내 이름의 분위기와 나는 참 다르다.  (그것이 디오게네스의 주장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지 내가 은은하고 고요하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그럴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나이 오십을 넘긴 나는 내 이름이 무척 맘에 든다. 은은하고 고요하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착하고... 내가 청룡의 운세를 타고 났다면 나는 청룡으로 살아가겠지.  그렇지 않아도 일년에 몇차례씩 태평양 상공을 날아서 오가며 살고 있으니 원하건 원치 않건간에 하여간에, 기운차게 살고 있는 것이니. ㅋㅋㅋ. 


이름 얘기가 나왔으니, 호칭을 논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나를 부르는 다양한 호칭이 있다. 학위를 부르기도 하고, 직함을 부르기도 하고, 우리 두 아들이 부르는 내 이름은 '옴마옴마'다.  얘들은 꼭 두번씩 부른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이름은 '옴마옴마'다.  엄마 한번 부르는 것으로 뭔가가 부족한 모양이다. 숨넘어가게 두번 부르는 옴마옴마가 내 이름이다. 디오게네스는 나를 '벤쳐'라고 부른다. 나 자신이 그에게 필생의 벤쳐라고 한다. 아주 성공적인 벤쳐모델이라고 한다. 혹은 나를 '갑'이라고 부른다. 벤쳐이며 갑이다. 그는 '을'의 신세를 면하겠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어딘가 을의 입장을 즐기는 것 같은 자학모우드로 보인다.  돌아다니면서 '갑'의 '갑질'을 고자질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취미생활로 보인다. 내 친구들은 다정하고 상냥하게 내 이름을 불러준다. 


내가 싫어하는 호칭도 있다.  시장에서 '아가씨, 이리와 보셔. 이것좀 사셔' 뭐 이럴때, 뻔한 중년 아줌마한테 아가씨라는 천박한 호칭을 쓸때, 나는 절대 그 쪽을 안 쳐다본다.  뻔한 아줌마한테 왜 아가씨라고 희롱을 하는가?  '아줌마'라는 호칭은 중립적이다. 그리 싫지도 좋지도 않다. 아줌마라고 불러도 별 상관이 없다.  교회에서 나를 '집사님' 혹은 '권사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꼭 정정을 해 준다, "저 그냥 성도에요." 일반 교회 다니는 사람을 '성도'라고 부른다. 신도라는 말이다.  혹은 자매님 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참 정겹다. 자매님.  참 정겨운 호칭이다.  나를 잘 지도해주시는 우리교회 목사님은 내게 꼭 ***자매님이라고 부르신다.  그 외에 집사, 권사, 장로 이런거는 어떤 직위이다.  나는 그런 직위체계 밖에 있으니까 그냥 성도다.  그런데 내 나이를 짐작하고 자기네 맘대로 그 나이때쯤 되는 아줌마들이 가질만한 집사나 권사 이런 이름을 내게 붙이러 드는 사람도 있다.  얼마전에는 교회의 최고 대장 목사님이 내가 감사헌금 낸것을 보고는 "*** 권사님"이라고 읽더라.  짜증나서, 그 다음에 감사헌금 낼때 헛갈리지 말라고 "***성도"라고 적었다.  제 멋대로 막 이름 붙이지 말라는 뜻이다.  


나보고 '보살님'이라는 사람도 있다. 짜증나는거지. 그게 절에서 내 또래 아줌니들에게 막 붙이는 이름이니까. 게다가 난 절에도 안다닌단말이지. 권사나 집사보살이나 그냥 내 허락도 안받고 자기네들 맘대로 갖다 붙이는 이름이다. 어딘가 나를 '조롱'한다는 느낌이 든다.  왜 나를 조롱하지? (나 승질나면 앞뒤 안가리고 불같이 화를 낼 수도 있는데, 이분들이 내 승질을 잘 모르시는거지...)   그냥 차라리 '아줌마'라고 불러주는게 낫겠다. 난 아줌마니까 아줌마라는 호칭이 싫지 않다. 적어도 권사, 집사, 보살보다 낫지. 그렇다고 집사, 권사, 보살님이 나한테 성낼필요는 없다. 나는 집사도, 권사도, 보살도 아니니 정확한 호칭이 아니므로 거부한다는 것이다.  


난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한테 '이모님' 이라거나 '이모' 뭐 이런 호칭 안쓴다. 그들은 내 이모가 아니니까. 남의 어머니한테 '어머님'이런 호칭 잘 안쓴다. 그 '어머니' 막쓰라는 호칭 아니다. 제 딸 강간하고 죽인 범인을 가리키면서 '그 삼촌이...' 그냥 이웃 남자가 왜 삼촌인가?  클래스메이트가 왜 '오빠'인가?  기묘한 현상이다.  전국민의 가족화 현상이 맘에 안드니까 난 그 호칭 안쓴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들여다보고 그에 걸맞게 불러주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다. 그 사람이 듣기에도 거북스럽지 않은, 다정하고 예절바른 그런 호칭에 대해서 고민을 하곤 한다 


성질 대단하다. 절대 우아하고 착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내 이름하고 안 맞는거 사실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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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