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9. 14. 09:41



http://www.segye.com/newsView/20180912005483


모 '갑 대기업'이 몇몇 '힘쎈' 대학 출신자에 대해서 입사 지원에 '갑님 우대'를 한 현장이 포착되면서 '갑님'에 포함되지 못하는 지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는 뉴스가 보인다. 


공무원채용이나 공공기관 직원 채용이라면 모를까 사기업에서 자기네 입맛에 맞는 직원을 맘대로 골라서 뽑겠다는 것이 크게 잘 못 된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가령 내가 집에서 가사를 도와줄 도우미님을 고용하려 하는데, 내가 내 기준에 맞는 사람을 뽑는다고 할 때, 내 이웃이 나를 비난할 자격이 없지 않은가?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라는 개념이 있기는 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그런데 그 CSR개념을 직원고용의 영역까지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런 현상을 가지고 CSR을 내세워 그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그런 개념을 적용을 하면 안된다는 것도 아니다. 인간 각자는 그가 속한 사회에 개별적으로 책임이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이고. 그런데 저 들을 상대로 공자왈 맹자활 아담스미스왈 할 생각없다.  


나는 대단한 대학 출신이 아니다. 공부 할만큼 해서, 내 수준에 맞는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 할만큼 하고 그럭저럭 한세상 잘 살아내고 있다. 대단한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열패감(?)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살고 보니까, 별것 아니더라구...


그러니, 입사 지원에서 밀릴 가능성이 큰 안대단한 대학 출신인 내가 이 문제를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당신들은 '선배'인 나를 따라 이렇게 외쳐도 좋으리라. "니네 맘대로 해라 이 우매한 갑님들아. 나 안 굶어 죽는다." (해석: 님들 뜻대로 하소서 높으신 갑님들이시여. 소생이 혹시라도 굶어 뒈져 님들께 폐를 끼칠까 그것을 저어할따름이옵나이다.)




대단하지 않은 대학을 나오신 분들, 기분 나쁘신가? 그러면, 행동을 하시라.  어떤 행동을 하실 것인가? 자 그 행동 지침을 가르쳐 드리겠다.  


(1) 개인차원에서 최대한 저항한다 

생각을 해보라. 잘 생각을 해보자.  저 스스로 '대단히 유명한 몇몇 대학생' 쪽수가 더 많은가, 아니면 '안대단한 다수의 대학교 학생' 쪽수가 더 많은가?  그 가족들까지 포함해보자. 어느쪽의 머릿수가 더 많은가?  힘의 원천은 여러가지이다. 큰 강을 이루는 샘물과 실개천은 수천가지이다.


아, 아, 아, 당신들은 희망을 가져도 좋다. 비열하게 숨어서 차별하는 저 어리석은 갑님들은 지금 자멸의 길을 가고 있는거니까. (해석: 거룩하게 인재를 선별하시는 지혜로운 갑님들이시여, 작금에 이르러 패망의 노선에 들어서셨으나 설마 한두해에 망하오리까. 고사목의 아름다움이 그대들의 길이오니이다.) 


모던자동차 회사가 그대들을 괄시하는가? 모던자동차를 팔아버려. 절대 사지말라구. 애국자라고 국산브랜드 자동차 타지? 저들은 애국자따위 안중에도 없으니까, 다른차도 많고 외제차 탄다고 매국노가 되는 세상이 아닌기라. 세별 회사가 그대들을 괄시하는가? 세별전화기 사지말고, 세별 전자제품도 사지말고, 그냥 무조건 안쓰는거야. 애국은 일방적인게 아니지. 사회는 상호적인거니까, 애국도 상호적이어야 하거든.  윤봉길의사가 살아계셨으면 - 차별하는 족속부터 일단 혼을 내셨을거니까. 잊지마시라고, 저들이 그대들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기억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회사 망하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어차피 그 회사는 그대의 직장이 아니셔. 그대를 뽑을 생각도 없는 회사가 망한대도 그대는 어쨌든 굶어죽지는 않을거라구.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리고 국내 경제및 세계경제에 관심이 많으며 정의사회 구현에 관심이 많은 어느 경제 평론가가 있었다. 그는 어느 전화기 잘 만드는 한국산 재벌에 대하여 극도의 경계심을 표시하며, 저들은 반드시 조정을 거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물었다, "송구하오나, 당신 전화기는 어느 회사 제품인가요?" 물론 그가 극도로 혐오하고 경계하는 그 한국산 재벌회사의 신제품이었다. "그런데, 그들 제품을 사 주면서 그 회사에 대하여 사회정의 실현을 외치시는가요?  물론 보복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도대체 개인차원에서 그대의 리액션(상응하는 행동)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들은 지금도 떵떵거리고 노동자가 죽어나가거나 말거나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나는 경제에 대해서 잘 모른다. 경제정책에 대해서 깜깜하다. 그러나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한다.  나는 먼지만큼도 가치 없는 소비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내 돈을 너희에게 쓰지는 않겠다는 정도의 리액션은 취한다는 것이지. 


(2) 개인이 자꾸만 떠들어서 옆집도 떠들고 윗집 아랫집 떠든다 (collective voice).


기분이 나쁘면 목소리를 내라.  댓글 조작단이 있건 없건 그건 그들의 문제이고, 선량한 시민들은 그냥 각자 중구난방 목소리를 자꾸 내는거다. 소 잔등의 등에처럼 자꾸 여기저기서 앵앵거리는거다.  등에는 소를 잡아먹을수는 없지만, 소를 움직일수는 있다.  침묵하지 말고 자꾸만 앵앵대는거다. 귀챦아서 소가 꼬리를 흔들고 머리를 흔들고, 자리를 뜰때까지.  그것은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혼자 앵앵거려서 무엇하나? 고민할 것 없다.  시체로 있는것보다는 살아 있다는 것만이라도 보여야 하는거다. 


(3) 입법을 요구한다. (legislative action)


사기업이 제 입맛에 맞는 때깔좋은 인재 뽑아 쓰는것이 위법이 아닌 이상 우리는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우리는 '고용평등에 관한 조항'을 법제화 하는데 힘써야 한다.  고용에 대한 남녀평등은 그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가 없는가는 차치하고, 입법이 되어 있다. 이제는 학교 간판이나 지역에 대한 차별도 철폐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입법화 해야 한다.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한국의 힘쎈 대학출신, 그 인재들이 아닌 그 이외의 여러대학 출신들을 골고루 등용하는 사기업에 대하여 정책적으로 여러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업도 연구 될수 있다.  내가 차라리 방통대 법학과에 입학하여 공부를 좀더 해 보든가 해야지 원, 무식하니 답답하다.


(4) 초대받지 못한 당신 (Live your life)


인정할건 쿨하게 인정하자.  다시 집단적인, 제도적인 논의에서 극히 개인차원의 얘기로 돌아가자.  인정할건 인정하자. 저들이 잔칫상을 차려놓고 사람을 부르는데 미안하게도 당신은 혹은 우리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왜 나는 초대 안해주느냐고 남의 잔치에 떼로 몰려가 난동을 부리는 것은 실례다.  그들은 그들의 잔치를 하게 내버려두자. 그리고 초대받지 못한 우리들은 우리만의 잔치를 하자. 



'초대받지 못한 자'라는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다.  놀랍지 않은가? 바로 당신이 주인공일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차피 판이 이렇게 흐르는거, 위에 적시한 방법 외에도 개인차원에서 그냥 얘기나 해보자.  나름 이러한 문제 해결 안으로 박근혜 정부에서는 '중동으로 눈을 돌려라 일자리 많다'는 코멘트도 있었고, 어떤 선생님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남의 가려운 다리를 긁는척 했다.  서울대 학생들이 아프면, 서울대 학생이 아닌 학생들은 곯아 터져 죽는게 이 작금의 한국 사회인거 모르나?  울타리 안에 있는자가 울타리 밖의 사정을 어찌 알겠는가. 설마, 나는 이런 사탕발림으로 내 자식들같은 청춘들을 속일 생각이 없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그냥 좀 더 고생을 해야 할거다. 미안하다 기껏 할 수 있는 말이 좀더 고생이라니.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부터 현재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삼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거친 직업의 숫자는 입 밖에 내어 말하기도 챙피할정도로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끊임없이 굴렀다.  한군데 안정적인 직업이 없이 끝없이 구르는 세월이었다.  한뼘씩 한뼘씩 나아갔고 올라갔다. 큰대학 출신의 인재들과 겨뤄서 승리하여 자리를 차지한 적도 있고, 그들이 거들떠도 안보는 그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일'마저도 열심히 했다.  



언젠가 30대 초반에, 주로 서울대, 연세대, 이대 출신들 인재들이 두툼한 지원서를 제출한 큰 언론사에 나도 지원서를 내어 일 할 기회를 얻는 적이 있다.  나를 채용한 담당 부서장이 내게 대놓고 말해줬다, "우리 부서는 원래 연세대판인데, (해석 -- 대대로 그 부서장은 연세대 출신들이 말아먹고 있었으니 끈끈한 선후배 관계로 서로 믿어주고 밀어주고 행복했다는 얘기다)  당신 지원서가 너무 특별하고 맘에 들어서 이번에 내가 당신을 뽑았다 (해석 -- 너는 시시한 대학 나온 사람인데, 네가 좀 특별해 보이는 것 같아서 실험적으로 너도 우리들 리그에 낑겨 준 것이니 일 잘해서 나를 실망시키지 말기 바란다.)  나는 빙긋 웃었고, 열심히 일했고, 나름 히트작을 많이 내고 나왔다. 



차별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개별적, 조직적 저항을 계속하되, 내 삶에서 나의 하루하루는 '전투' 모우드가 되어야 한다. 주어지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다른 기회를 찾는거다. 언제까지? 죽을때까지. 



당신은 이렇게 물을수 있다.  개 풀뜯어 먹는 소리좀 하지 말라.  어떤 놈은 우리나라 1등 대학나왔다고 큰 회사 들어가서 월급 많이 받으면서 비슷한 배우자 만나서 몇해 안에 강남에 집사고, 외제차 굴리고 애들 최고급 교육 시키면서 나이 먹어갈때, 나는 1등 대학 못나왔다는 이유로 평생 차별당하고, 하루 24시간 일해도 남는게 없고, 자식들도 알바 시켜야 간신히 대학보내는 팔자인데 나한테 노력만 하라는건가? 



노력하기 싫으면 노력하지 말라.  그래도 굶어죽지는 않는 사회 시스템은 갖춰져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내 앞에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잘 살아보려는 노력은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내가 50넘어 깨달은 사실.  돈 가진자가 가진 돈 만큼 행복한 것 같지는 않더라구... 그리고 대체로 돈이 좀 적어도 집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소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더라구.  1등 대학 다니는 학생들도 자살이란것을 하더라구. 1등대학 출신들도 자살이란 것을 하고, 그들 중에도 실업자들이 많더라구. 자, 고생길이 열렸다.  그 길을 의연하게 걸어가면서 좋은 기회가 생기면 갈아타고, 또 앞으로 나아가는거다.  한평생 그러고 살다 죽는거다.  그 길에서 동료들과 함께 웃고, 가끔 막걸리파티도 하고, 누가 사글세에서 전세로 옮겼다고 하면 함께 기뻐해주고, 누가 중고자동차라도 샀다고 하면 함께 축하도 해주면서 그렇게 살면 대체로 괜챦은거다.  평생 소시민으로 살다 죽으라는 말이 아니다.  원대한 꿈을 꾸건 작은 꿈을 꾸건 꿈의 싸이즈는 당신의 자유다. 얼마나 노력할지도 당신의 자유다. 얼마나 내가 누리는 것에서 기쁨을 찾아낼지도 당신의 자유다.  그것이 해결이 안되면, 당신은 30억짜리 집 열채를 강남땅에 가지고 있대도, 우울증으로 세상 끝낼수도 있다. 내 이야기가 배에 기름낀 브르쥬아 아줌마의 헛소리 처럼 들릴수도 있다.  내  큰 아들은 제법 이름있는 대학을 나와 만 3년 가까이 하루 13시간이상 온몸을 써서 일하는 직장에서 화장실 청소부터 물건 나르는 일까지 총체적 막노동을 하며 지내고 있는데, 퇴근하면 허리에 파쓰를 붙이거나 물리치료사 찾아가서 망가진 몸 고치는 것이 유일한 여가생활처럼 보인다. 그가 그 삶을 묵묵히 견디는 이유는, 그것을 인생의 피치못할 과정으로 보고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기간으로 보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렇게 된거, 불평해봤자 마음만 고단해지고, 앞날을 향해 오늘 하루 잘 살아내는거다.  음...  '초대받지 못한 자'라는 영화가 있다면 당신이 주인공이다. 바로 당신도 주인공이 될수 있는것이다.  주인공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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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